“관객의 따뜻한 한마디에 일어섭니다”
[청년 잇소] (19) 광주시립발레단 수석발레리나 강은혜 씨
‘청년 잇소’ 열아홉 번째 주인공은 광주시립발레단 수석발레리나 강은혜 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광주예술의전당에 소속된 광주시립발레단 수석발레리나 강은혜입니다. 그동안 ‘백조의 호수’ 오데뜨, ‘라 실피드’ 실피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로라, ‘호두까기인형’ 클라라, ‘오월바람’ 혜연 등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뿐 아니라 성인 발레와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지도 활동도 병행하며 발레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발레를 시작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 초등학교 전학 후 방과 후 활동으로 무용부에 들어가면서 처음 발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저의 자존심 강하고 끈기 있는 성격이 발레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해외 발레단 진출을 꿈꾸었지만,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그러던 중 ‘프뉴마’라는 선교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국내외를 다니며 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지금은 광주시립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끈기있는 성격”
-2020년 오월바람(5·18)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오월바람’은 현대적인 요소와 클래식 발레가 결합된 창작 발레로 저에게는 매우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처음엔 무척 낯설고 어색했죠. 그래서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5·18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부터 공부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사건을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한 시대의 아픔과 희생을 제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무게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그 감정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움직임 하나에도 애도와 슬픔이 묻어나도록 연구하고 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아픔을 승화시키며 시민들에게 그날의 역사를 다시금 기억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월바람’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객들과 함께 그 기억을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청년들이 발레에 좀 더 쉽게 다가가거나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예전과 비교하면 발레는 확실히 대중화가 많이 된 것 같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취미로 발레를 하기도 하고, 성인들이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발레 학원이나 원데이 클래스도 많이 늘어났죠. 덕분에 발레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예술이라는 인식은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발레라고 하면 ‘진입장벽이 높다’라고 인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교육 과정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학교 교육안에서 발레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청년들이 훨씬 더 쉽게 발레를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발레를 직접 배우는 것만이 방법은 아닙니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즐기는 것 또한 발레와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에요. 광주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서 저희 시립발레단의 공연 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정기 공연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공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즐겁게 발레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발레리나로 활동하면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무대에 선 뒤 관객분들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듣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네이버에서 제 인터뷰를 검색하다가 어떤 분이 남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한 해 동안 너무 불행하다고 느꼈는데, 발레 공연을 보고 한 해를 위로받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더라고요. 그 글을 본 순간 저에게는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아 힘들 때마다 다시 꺼내 보게 되고 무대에 서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관객 한 분의 진심 어린 반응이 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좋은 무대와 진심이 담긴 공연으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했습니다.
광주 발레의 발전 위해 더 많은 무대로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처음 광주로 내려왔을 때는 사실 제 개인의 발전과 역량 강화에만 목표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광주 발레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점점 힘들어져 가는 지방 발레계에서 어떻게 하면 광주가, 그리고 우리 발레단이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죠. 저는 거창한 것보다 먼저 본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광주 발레의 발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무대에 서고 다음 세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며 더 훌륭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현재 대학원에 진학해 다양한 체육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발레에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무용뿐 아니라 여러 영역을 융합해 발전시키는 시도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저의 적은 노력이 쌓여 언젠가 광주의 발레가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저는 예술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발레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 점점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서 예술을 통해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영육 간의 강건함’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른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들고, 건강한 육체가 다시 건강한 생각을 이끈다는 뜻이지요. 저는 청년들이 단지 먹고사는 데 급급한 삶이 아니라, 예술을 즐기고 누리면서 정신도 몸도 함께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