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사랑과 슬픔의 빈투롱
이름처럼 좀 빈티 나는 청록빛의 사향고양이과 중 가장 큰 동물이 있다. 처음 동물원에서 그를 접했을 땐, 물론 일반 고양이과 동물과 사향고양이과 동물이 분명 다르긴 하지만, 표범, 사자,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 동물에 비해 빈투롱은 겉보기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러 누가 처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늑대와 코요테 같은 주로 개과 동물이 사는 소맹수가 한 귀퉁이에 그를 배치해 놓았고, 거의 야행성이고 나무 위에 사는 데도 그런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한 번 그렇게 생각 없이 동물을 배치해 놓으면 좀처럼 다시 재배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희귀 동물인 ‘빈투롱’은 처음 포지션을 잘못 잡아서 조용히 잊혀진 체 평생을 독방에서 존재감 없이 혼자 살았다. 필자 역시 동물원 초보 시절인지라 ‘쟤는 도대체 뭐지?’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거의 그림자조차 보여주지도 않고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는 동물인지라 건들면 안 되는 사나운 동물쯤으로 여기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 이상 그냥 지나치고 살았다. 그리고 변명 같지만 다른 유명 동물들이 많아 그를 연구하고 돌볼 겨를조차 사실 없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오래도록 은근의 표상으로 지내던 빈투롱이 죽었다. 누구 하나 슬퍼하진 않았다. 원래 걔는 그랬으니까. 그의 죽음조차 너무 조용했으니까.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신문 기사에서 빈투롱에 대한 흥미 있는 기사거리를 읽게 되었다. “빈투롱을 비롯한 여러 초식성의 사향고양이들이 ‘루왁 커피’ 생산에 희생되고 있다.” ‘엉, 뭐지? 빈투롱은 육식동물 아니었나?’ 그때까지 난 그가 무얼 섭취하는지조차 몰랐다. 기사 내용은 여러 종류의 사향고양이들은 식물성 먹이를 섭취하고 이들은 씨앗을 골고루 숲속에 퍼트리는 정원사 역할을 하고 있고 심지어 목졸라 무화과는 빈투롱의 소화효소가 없으면 발아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점을 이용해 이들 초식성의 사향고양이들에게 루왁 커피 열매를 집중적으로 먹여 똥으로 그 씨앗을 받아 커피를 생산하는데, 그 과정에서 서식지 파괴는 물론 그 사육 과정에서 좁은 철창에 가두고 단순한 먹이만 먹이는 동물 학대가 자행된다는 거였다.
‘아! 그 칙칙해 보이던 빈투롱이 채식을 하는 순한 동물이었구나! 진즉 알았으면 한 번 더 가서 가까이 좀 하고 잘 보살펴 줬을 텐데.’ 하고 후회했다. 사육사를 비롯한 누구 하나 그런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물론 미리 공부도 안 하고 지레 관심이 끊은 내 잘못이다.
빈투롱이란 이름은 말레이어로 ‘숲’이란 뜻이고 그렇게 동남아시아 숲속 곳곳에 잘 숨어 살며 9아종이나 존재한다고 하지만 모두 멸종위기 상태란다. 영어로 Bear cat (곰고양이) 부른다. 덩치는 곰같이 커 보이고(실은 리트리버 크기쯤) 두 발로 곧잘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앞뒤 모두 다섯 발가락을 가졌지만, 얼굴은 몸에 비해 작고 수염이 위로 나 있고 또랑또랑한 눈과 작은 귀가 마치 고양이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딱 곰고양이라는 애칭이 적절한 것 같다. 여러 검색 사진들을 통해 다른 동물원에 사는 빈투롱을 보니 2~3마리 낳는 새끼들도 정말 귀엽고 나무도 잘 타고 마치 꼬리감기원숭이처럼 근육질의 강한 꼬리만으로 나무를 붙들고 다니는 멋진 재주를 부릴 수 있다. 특히 진한 푸른빛이 도는 신비롭고 두터운 털색으로 무척 인기가 높은 동물이었다. 일부 말레이 원주민들은 이들을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하고 배설물에서 버터 팝콘 냄새가 나는 고소한 동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런저런 여러 지식들을 모으고 나니 빈투롱은 그냥 허투루 지나칠 동물이 아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의미 부여를 했더라면 우리 빈투롱도 무척 빛나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동물원에 한 마리 있던 희귀 동물 빈투롱은 아무 일 없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린 흙 속에 숨은 보석을 전혀 알려고도 알아보지도 않았다. 선입견과 주변 분위기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이기적인 시선을 사진 속 빈투롱은 아프게 질책하고 있었다.
최종욱 <수의사>
▲빈투롱(곰고양이, 나무사향고양이, Binturong, Bearcat)
- 학명 : Arctictis binturong
- 분류 척삭동물 > 포유강 > 식육목 > 사향고양이과 > 빈투롱속 > 빈투롱(말레이빈투롱 등 9아종)
- 크기 : 몸길이 : 71~84cm, 꼬리 66~69cm이다. 평균 15kg, 보통 암컷이 수컷보다 큼
- 식성 : 주식은 무화과이며, 가끔 작은 포유류, 새, 곤충을 먹음
- 수명 : 평균 10~20년, 최대 25년
- 서식지 : 인도, 네팔,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등 키 큰 나무가 많은 깊은 우림 지대
- 번식 : 생후 2년후 성성숙, 임신 84~99일. 한배 1~6마리 출산(평균 2). 15살에 불임시작
- 천적 : 호랑이, 표범, 구름표범, 승냥이, 그물무늬비단뱀 등
- 멸종위기등급 : 취약(VU : Vulnerable 출처 : I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