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꼬집기] 라스푸틴 망령과 한국의 주술 정치
러시아 제정 말기, 황실의 한복판에 파고든 이름이 있었다. 라스푸틴.
시베리아 출신의 무명 수도승이었던 그는 기도와 신비적 치유 능력을 앞세워 황태자의 병을 돌보며 황실의 신임을 얻었다. 황후는 라스푸틴을 ‘신이 보낸 사람’이라 믿었고, 차르조차 그의 말에 흔들렸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분명하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의 불안과 균열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제도가 흔들릴 때, 권력은 합리 대신 주술에 기대었고, 그 결과는 제국의 몰락이었다.
낯선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한국 정치에서 목격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권력 주변에 ‘천공’과 ‘건진법사’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천공이 용산 후보지를 먼저 둘러봤다는 풍문, 외교와 인사 문제까지 조언한다는 보도는 국민을 놀라게 했다.
건진법사는 대선 캠프에 몸담으며 조직과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두 인물 모두 공직자가 아니었지만, 정권의 심장부를 흔드는 그림자로 떠올랐다.
주술적 인물의 등장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가 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지도자가 확신을 잃을 때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다.
라스푸틴이든 천공이든, 그들의 힘은 신비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불안한 권력자의 심리와 흔들리는 제도의 틈에서 나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책임이다. 그러나 주술적 권위는 언제나 이 원칙과 충돌한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앞당겼다. 황실이 그에게 기댄 순간, 국민은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했고, 체제는 신뢰를 잃었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천공과 건진법사 논란은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국민은 정책과 인사가 공개된 절차와 전문가의 검증 속에서 이뤄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풍문과 그림자가 국정을 흔든다면, 민주주의는 근본부터 흔들린다.
정치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맞선다.
경제 위기, 외교적 갈등, 사회적 분열 속에서 지도자는 종종 확신을 잃는다. 그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주술적 카리스마’다. 전문가의 차가운 분석보다, 초월적 권위의 한마디가 더 큰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위험하다. 책임을 지지 않는 조언자, 제도 밖의 권위에 기대는 순간, 정치의 합리성과 민주적 절차는 힘을 잃는다.
라스푸틴은 100년 전 인물이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이 불안할수록, 주술적 그림자는 짙어진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주술을 배제할 때만 제힘을 발휘한다. 한국 정치가 과거의 망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정의 모든 과정은 빛 아래 공개되어야 한다. 책임 없는 권위가 아니라, 제도와 토론 위에서만 권력은 정당성을 얻는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황실을 무너뜨린 그림자였다. 한국 정치도 같은 길을 걸었다. 주술에 흔들리는 권력은 국민을 잃고, 국민을 잃은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동서고금 똑같다.
100년 전 러시아 황실의 사례를 오늘날 우리는 한국에서 경험했다. 권력은 그림자가 아니라 빛 아래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반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