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작가들 광주서 ‘진실’ 묻다

‘다들 들은 건 좀 다르대, 무언가 있었던 것 같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서 오는 28일까지 전시

2025-09-15     유시연 기자
아리프 부디만 작.

 기억은 결코 하나의 목소리로 남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장면을 기억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오는 28일까지 광주 남구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글라스폴리곤, 베이스폴리곤에서 열리는 전시 ‘다들 들은 건 좀 다르대, 무언가 있었던 것 같아’는 바로 이 기억의 편차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인도네시아 동시대 작가 아리프 부디만, 랑가 푸르바야, 레가 아윤다 푸트리, 마리안토, 위모 암발라 바양과 광주 기반 기획자 그룹 ETR(Easy To Read, 신지유·양다솔·최영서)의 협업으로 기획됐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닌 이들이 전시라는 무대에서 만나, 기억과 역사, 공동체와 감각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연다.

 전시는 ‘무언가 있었던 것 같지만 다들 다르게 기억한다’는 모호한 감각을 중심에 두고, 집단적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기억의 차이와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사의 다층성에 주목한다.

 이는 하나의 사실이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와 해석이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어온 서사를 흔들어 놓는다.

랑가 푸르바야 작.

 작가들은 각기 다른 작업 방식으로 이 주제를 풀어낸다.

 아리프 부디만은 인도네시아 위안부 제도라는 역사적 폭력의 공백을 상상과 기술로 메운다. AI와 인터넷 아카이브를 활용해 ‘만들어진 현실’을 구성하고, 위안부와의 상상 인터뷰를 통해 잊힌 목소리를 복원한다.

 랑가 푸루바야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과 강제노역의 흔적을 중앙 자바 워노기리의 숲과 산에서 발굴한다. 그는 생존자의 증언과 아카이브의 파편을 엮어, 침묵 속에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레가 아윤다 푸트리는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오염과 폐기물 속에서 변이된 생물과 미래 생태계를 창조한다. 불법 복제된 플레이스테이션 디스크 위에 까마귀의 진화를 기록하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첨단 소비가 남긴 폐기물과 노동의 불평등을 시각화한다.

 마리안토는 라자 암팟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 감춰진 니켈 채굴 현장을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는 자연의 역설을 회화로 표현한다. 검은 풍경을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는 행위는 땅의 상처를 드러내는 제스처이며, 개발의 이면에 숨겨진 고통과 불평등을 물리적으로 드러낸다.

 위모 암발라 바양은 시도아르조, 켄덩 산맥, 와다스 등 개발로 인해 공동체가 위협받은 세 지역을 추적한다. 그는 흙, 진흙, 돌, 시멘트라는 물질을 통해 상실과 저항의 흔적을 기록하며, 사진·오브제·텍스트를 결합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이번 전시는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 현실과 상상,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다층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다섯 명의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한편 이번 전시는 아트주, 호랑가시나무창작소가 주최·주관하고 광주광역시가 후원하며 예술공간집, 콜렉티브 스페이스, ETR이 협력한다.

 전시에 관한 문의는 호랑가시나무창작소 (062-682-0976)로 하면 된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