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무성히 자란 풀 뽑다가…

[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7) 긴장된 삶 속 여유 찾는 법

2025-09-16     백청일, 오숙희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토방 앞과 T자 화단 앞 풀들.

 돌아보니 산책길이 풀들 세상으로

 산책길이 어느새 풀밭이 되어 있습니다. 강자갈을 깐 산책길인데, 길이 보이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호피석을 깔아 놓은 길은 그나마 좀 낫지만, 일부 구간은 호피석 주변의 풀들이 서서히 덮고 있습니다.

 산책로 중 토방 앞쪽 맨발길은 황톳길인데, 이곳의 풀은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곳보다 이곳의 풀은 아주 가늘고 섬세한 게 특징입니다.

 4월이 되면 텃밭, 산책길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합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늦어도 보름에는 한 번씩 풀 뽑기 작업을 합니다. 올해도 벌써 몇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부터 일이 많아져서 돌볼 틈이 나지 않다 보니, 9월 들어 풀이 발목은 이미 덮고 무릎까지 올라올 기세입니다.

 실은, 해마다 그렇지만, 올해 “역대급 이상기후”라고 해서 아침만 지나면 늦은 오후까지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질 정도라, 곰돌곰순이네도 풀 뽑기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날을 받아야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풀 뽑기 좋은 날을 잡기도 하고, 아예 늦은 오후부터, 그때도 해는 뜨겁지만,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풀이 자랄 때까지 두고 보지는 않았는데. 참, “할많하않”이라더니.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유구무언”이라. 곰돌곰순의 게으름일 뿐인데. 더 늦어지기 전에 손을 보아야겠습니다.

풀 뽑기 후 산책길 모습.

 전성기의 풀들에게 미안하지만

 강릉에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은 타들어 가고, 제한급수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올라오다 보니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광주만 해도 상습 침수 구간은 큰비에 재난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곳 담양 또한 큰비가 오면 영산강이 넘쳐 주변의 논들은 잠기고, 마을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상기후가 진정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니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9월 들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 기후는 가을에도 여전해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여전히 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입니다. 거기다 지난주 이곳에는 며칠 동안이나 반복해서 오전에는 햇볕 쨍쨍, 오후에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주말 저녁부터는 번개와 천둥, 쏟아지는, 아니 그냥 막, 퍼붓는 세찬 비로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이제 좀 멈추었나 싶은 이른 아침에도 귀가 먹먹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습니다. 기상청에서도 이 정도의 급변하는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할 정도이니.

 그런데 풀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비 온 후 풀들은 “물 만난 메기”처럼 하늘 향해 거침없이 쑥, 쑥, 자랍니다. 이제는 “우후풀선생”이라는 표현이 익숙합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풀 뽑기는 비 온 후에 하는 게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비 내린 다음 날 또 비가 내릴 때 비를 맞으면서 하면 아주 좋습니다.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한 사람처럼, 풀이 뿌리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온통 물에 푹, 취했을 때가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손을 좀 빠르게 놀리면 시원하고 깨끗하게 풀 뽑기를 할 수 있습니다.

 곰돌곰순네 산책길은 자갈길(강자갈로 깐 산책길)이라 맨땅의 풀들보다 깊고 튼튼하게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풀 줄기나 끝부분을 잡고 뽑다 보면, 뽑히지 않고, 툭 끊어지게 됩니다. 한 손으로는 풀 밑둥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호미로 자갈을 긁거나 파헤치면서 쑤-욱, 뿌리째 뽑아 올린다는 마음으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물을 잔뜩 머금어 흥겨운 기분에 흠뻑 취해 있는 풀을 보노라면 호미 대신 장갑 낀 손으로 자갈을 긁어대고 파헤치면서 풀 뽑기를 하게 됩니다. 호미보다 시간이 더 빠르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장갑 손가락 끝이 구멍이 나긴 하지만, 그걸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고, 어, 빵구났네, 하면서도 개의치 않고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맨손으로 자갈을 파헤치시면서 풀을 뽑으시던 걸 잔소리하며 말리기 바빴는데,이제 풀 뽑기를 할 때마다 당신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리고 있습니다.

 “야, 야, 우리도 좀 먹고 크자”라는 풀들의 말이 들리기도 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숨죽이고 있다 비를 맞아 비로소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허공을 뚫고 나온 풀들을, 어찌보면 지금이 전성기일 수도 있을 텐데 잔인하게, 뿌리째 뽑아버리니, 좀 미안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돌이에게는 이때가 또 “삭초제근”의 더없는 기회이니 놓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비 갠 후 집 옆 논과 마을 풍경.

 풀 뽑다 불현듯 깨달음이

 한 구역씩 작업하다 잠깐 쉬고 다시 작업하고. 이걸 계속 반복하다 보니 허리도 아파 오고, 무릎도 조금씩 시큰거립니다. 이미 양손가락은 많이 뻣뻣해졌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좀 급합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여기서 작업을 중단하고 내일하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찝찝함이 계속해서 남게 되고, 내일 갑자기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해가 쨍쨍, 내리 쬐면 그 불볕 더위 아래 다시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일하는 속도와 리듬이 붙었을 때 하는 일과, 새로 시작하는 일의 속도, 리듬은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내리는 비가 점점 세차지고 있습니다.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듯 곰돌이 쓴 모자 끝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지만,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 작업의 끝을 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맨발길. 이 길은 토방 앞쪽 일부 산책로 구간 자갈을 걷어내고 흙 위에 산에서 조금씩 가져온 부엽토를 깔고, 그 위에 황토를 다시 깔아서 만든 길입니다. 이곳에도 풀이 나는데, 이곳의 풀들은 자갈길의 풀과 달라서 아무래도, 땅이다 보니 뿌리가 보통 튼튼하게 박혀 있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호미로 일일이 긁어대고 파내서 뿌리를 뽑고 길을 정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호미를 쓰지 않고 풀의 밑둥을 바짝, 그러쥔 채 제끼면서 뽑고 있습니다. 뿌리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거죠.

 한참 풀 뽑기를 하다 보면 일정한 리듬이 생기면서 재미가 있습니다. 정리해가는 구간을 돌아보면서, 남은 구간을 확인하면서 보람과 성취감도 느껴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풀들은 땡볕에서 인고의 시간을 지내고 비를 맞고 있는 지금, 이제 원하는 걸 이루고 있다며 아주 조금은 ‘방심’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무줄같이 팽팽하던 긴장의 시간이 지난 뒤 찾아 온 아주 잠깐의 이완의 시간. 때로는 조금 긴 시간이 되기도 하는 그 시간. 흔히, “찰나의 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 ‘누구’를 만나기도 하고, ‘일’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때’,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수습 가능한 일’부터 수습하기 벅찬, ‘돌이킬 수 없는 사건’까지.

 생사가 걸린 진검승부를 막 끝내고 마을로 접어든, 아주 조금은 긴장을 내려놓은 무사시에게, 칼을 제대로 들기에도 지쳐버린 무사시에게, 또 다른 무사가 찾아와 진검승부를 하자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시험이 끝났다고, 논문작업이 끝났다고,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행사가 끝났다고, 일이 끝났다고, 크게 기뻐하거나 아주 조금은 한시름 놓았다며 긴장을 풀어놓은, ‘바로 그 순간’.

 왜 그럴 때 만나는 사람과 다시 대면하게 되는 일은, ‘나’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건지. 그때의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애인이기도 하고, 믿고 의지하던 직장 동료이기도 하며, 심지어 가족이기도 합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텐데, 왜, 꼭, 그때, 그 순간이어야 했을까.”

 다시 한 번, 풀에게 미안하지만, 비 온 후 풀 뽑기는 정말 좋습니다. 풀에게 이걸 말해준다고 해도 풀이 알아들을 리 없겠지요. 설령, 풀이 알아듣는다고 해도, 자연의 이치대로, 본능대로 움직이는 풀이 무얼 어떻게 ‘대비’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요. 곰돌이도 마찬가지인데, 가령, 원고를 탈고한 후에 오는 성취감과 허탈함 끝에 찾아오는 ‘그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계’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삶의 순간에, 사람과 일과 만나는 걸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간’은 어쩌면 오롯이 ‘본인의 시간’이 아닐지. ‘그 시간’ 직후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일’을 만나더라도, 결국은 ‘본인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그 시간’과 ‘사람/일’ 사이의 만남 ‘바로 그 순간’, ‘그 바늘 같은 틈 사이의 시간’에 ‘아주 조금의 여유’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