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노란 꽃 눈부신 햇살처럼 습지 밝혀

[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82)햇살 닮은 생명의 빛, 노랑어리연

2025-09-18     김영선
활짝 핀 노랑어리연.

 여름이 끝날 즈음 습지를 찾아가면, 수면 위에 둥근 잎들이 넓게 퍼져 있고 그 사이로 환한 노란 꽃들이 눈부신 햇살처럼 반짝인다. 바로 노랑어리연(Nymphoides peltata)이다. 멀리서 보면 수련과 비슷해 보이지만, 꽃은 훨씬 작고 선명한 노란빛으로 습지를 환히 밝혀준다. 영산강과 황룡강에 위치하고 있는 용산습지와 장록습지, 광주의 대표적인 저수지인 대야제와 전평제 같은 남도의 습지에서는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이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나고, 드넓은 수면을 황금빛 융단처럼 수놓는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노란 꽃송이는 습지를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남도 풍경의 여름을 장식하는 소박하면서도 빼어난 장면으로 손꼽힌다.

 노랑어리연은 식물의 외형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선 ‘노랑’은 꽃의 선명한 색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름 습지 위에 수놓인 황금빛 꽃송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어리연’이라는 이름은 연꽃을 닮았지만 크기가 작고 아담하다는 점에서 붙여졌다. 실제로 수련이나 연꽃과 비슷하게 물 위에 둥근 잎을 띄우고 꽃을 피우지만, 그 모습이 훨씬 작고 앙증맞아 ‘작다, 어리다’라는 의미가 덧붙은 것이다. 결국 노랑어리연은 ‘노란색을 띤 작은 연꽃’이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노랑어리연이 활짝 핀 모습.

 노랑어리연의 학명 Nymphoides peltata 또한 흥미롭다. 속명 Nymphoides는 그리스어 ‘님프(nymph?)’에서 유래했는데, 물가의 요정을 뜻하며 ‘연꽃을 닮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소명 peltata는 라틴어 ‘펠타(pelta, 작은 방패)’에서 왔는데, 둥글고 방패 모양인 잎의 형태를 지칭한다. 즉, 학명 전체는 ‘연꽃을 닮은 방패잎 식물’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처럼 국명과 학명 모두 꽃의 색, 크기, 잎 모양 등 눈에 띄는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랑어리연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관찰되어 온 식물인지를 보여준다.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언어가 담겨 있는 셈이다.

노랑어리연.

 생태적 특징은 가지목 조름나물과에 속하는 관속식물로 땅속줄기는 뻘 속에서 길게 뻗는다. 줄기는 길게 자라며,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줄기의 마디에서 여러 장이 모여 나서 물 위에 뜨며, 두껍고, 원형 또는 난형이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 또는 갈색이다. 잎자루는 길며, 아래쪽이 넓다. 꽃은 7~9월에 물속의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여러 개 물 위로 나와 노란색으로 핀다. 꽃받침은 녹색,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노랑어리연의 꽃부리는 다섯 갈래로 깊게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의 가장자리는 가늘게 실처럼 갈라져 있어 마치 흰 털이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의 중앙에는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자리해 단순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조를 이룬다. 꽃이 진 뒤에는 열매껍질이 갈라지는 열매(삭과)가 맺히는데, 타원형으로 생겨 물 위에 떠다니거나 물살을 타고 흩어지며 씨앗을 퍼뜨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연못이나 강가, 습지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전라남도 일대의 저수지와 습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지 주변 습지에 자생해 농민들에게 친숙한 존재였으며, 최근에는 습지 생태계 보전 활동과 함께 주목받는 대표적인 수생식물이다.

대동고등학교 앞 전평제.

 노랑어리연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꽃이 아니다. 습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첫째, 수질 정화이다. 잎과 뿌리는 물속의 질소, 인 같은 영양염류를 흡수하여 과잉 영양분을 줄여주고, 수질을 맑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수면에 넓게 퍼진 잎은 햇빛을 차단해 조류(藻類) 폭발을 억제하고, 뿌리망은 물속 부유물과 오염물질을 걸러내 자연의 필터 구실을 한다. 습지가 ‘자연의 콩팥’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기능 때문이며, 노랑어리연 역시 그 한 축을 담당한다. 둘째, 생물다양성 유지이다. 넓은 잎 아래는 작은 물고기와 수서곤충의 피난처가 되고, 잎 위는 개구리나 잠자리의 쉼터가 된다. 노란 꽃은 벌, 나비 등 곤충들에게 꿀과 꽃가루를 제공해 여름철 먹이원이 된다. 꽃이 지고 난 뒤 생기는 씨앗과 잎은 물속 생물과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어, 습지 생태계의 순환을 이어간다. 결국 노랑어리연이 있는 연못은 작은 생명부터 철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의 삶을 지탱하는 터전이 된다.

둥근 잎 사이 노랑어리연.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언제까지나 보장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폭우, 습지 매립으로 남도의 많은 저수지와 늪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70여 곳의 내륙습지가 소멸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전라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논과 도로 건설로 습지가 사라지면서 토종 수생식물의 서식지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습지가 사라지면 노랑어리연 역시 자취를 감추고, 그와 함께 수많은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 무너진다. 노랑어리연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깨끗한 물과 건강한 습지가 있어야만 그 아름다움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습지에 환경이 회복되자 다시 노랑어리연이 피어난 사례도 보고되곤 한다. 이는 자연의 회복력이 얼마나 강인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생태계 신호다.

 이제 생명이 살아있는 습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랑어리연은 자연의 회복력과 공존의 가치를 전해주는 작은 스승이다. 하루밖에 피지 않는 짧은 생애를 이어가며 여름 내내 수면을 채우는 모습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인간의 개발과 기후위기가 빠르게 습지를 위협하는 지금, 물길을 살리는 물순환도시와 도심의 온도를 낮추는 광주숲 조성은 도시 대전환의 길을 여는 백년광주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광주패밀리랜드 주변 대야제.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