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꼬집기] 악은 괴물이 아닌, 평범한 얼굴을 하고 온다
“악은 특별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20세기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남긴 말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20세기 이후 가장 강력한 윤리적 경고 메시지다.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취재했다. 아이히만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조직·실행한 핵심적 인물이었다. 1945년 나치 독일 패망 후 도피하다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붙잡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아이히만을 잔혹한 괴물로 여겼다. 그러나 아렌트가 법정에서 마주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괴물이라기보다는 상관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규정을 따르는 지극히 평범한 관료였다. 아이히만이 한 일은 지극히 행정적인 것이었다. 법정에서도 그는 정해진 규칙과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따랐을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악의 가장 비옥한 토양
아렌트가 여기서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생각을 유보한 채 체제 속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목격한 것이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불렀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악은 반드시 증오나 치밀한 계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고 현실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순간, 평범한 사람 속에서도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악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교훈을 그저 먼 과거,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이 개념을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을 우리는 생생히 목격했다. 국무위원이라고 불리던 이들, 계엄 해제 회의에 불참한 국회의원들, 권위를 앞세우던 군인들 - 그 누구도 계엄이 비상식적이고 반헌법적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춰 서서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명령이니까”, “윗사람이 시켰으니까”라는 말에 기대어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아렌트가 지적한 아이히만의 변명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 결과 우리의 역사는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생각하라. 그리고 책임져라”
아렌트가 보기에 진정한 악은 ‘사유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사유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다. “나는 그저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라는 말은 결코 책임을 면하게 해 주지 않는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악의 가장 큰 원천”이다. 사유가 멈춘 자리에는 언제나 무책임이 남고, 그 무책임들이 모여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들고 파괴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인간이 되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자문해야 한다. 일상에서 부당한 지시, 공동체의 침묵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아이히만’적인 사람은 아닌지. 악은 언제나 거대한 명분을 두른다. 그리고 늘 평범한 얼굴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아렌트가 남긴 메시지는 간단하다. “생각하라. 그리고 책임져라.” 악을 막는 유일한 길을 그것뿐이다.
김봉철 조선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