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광주발 K-복지 어디까지 (2) 초등 학부모 10시 출근제
임금 삭감없이 ‘돌봄의 골든타임’ 확보 전국 최초 도입… 3년 만에 지원 건수 5배 확대 “육아 부담 확 줄였다” 학부모·기업 모두 ‘호응’ 2026년부터 유아기 자녀까지 전국 시행 확정
광주·전남은 산업, 복지, 환경, 교통 등 현안들이 산적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각종 정책들은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본보는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탄생 배경부터 현 상황과 과제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저출생 위기가 가파르게 심화되는 가운데 광주시가 내놓은 육아정책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초등학부모 10시 출근제’다.
2022년 1월 광주시는 전국 최초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오전 10시 출근을 허용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아이의 등교를 챙기고 난 뒤 출근해도 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시가 사업주에게 생활임금 수준에 준하는 지원금을 보전해주는 방식이었다. 당시 100건의 지원분을 모집했다. ‘학부모에게는 임금 손실 없는 여유 시간, 기업에는 가족친화경영 확산’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기존 고용노동부의 워라밸 장려금 제도가 근로시간 단축 시 임금 감소와 복잡한 절차로 중소사업장에서 활용이 어렵던 현실을 감안하면, 광주의 시도는 단순하면서도 실효성이 컸다. 특히 10인 미만 영세사업장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돌봄의 골든타임’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첫해부터 학부모와 기업의 반응은 뜨거웠다. 광주시는 이에 힘입어 2023년 지원 건수를 125건으로 늘리고,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와 지사 영업소까지 확장했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백화점 판매원 등 사실상 사업장에 종속돼 근무하지만 기존 제도에서 배제됐던 이들도 처음으로 지원 범주에 포함됐다.
2024년에는 지원 규모를 150건으로 확대하고, 지원금도 2개월 74만 8000원으로 상향했다. 이어 같은해 추경을 통해 예산을 추가로 확보함에 따라 사업 대상을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넓혔다. 이로써 학부모들의 요구였던 ‘전 학년 확대’가 실현됐다.
올해 들어서는 지원이 한층 더 커졌다. 지원 건수가 500건으로 껑충 뛰었고, 지원액도 월 40만 원(2개월 총 80만 원)으로 상향됐다. 불과 3년 사이 사업 규모가 5배 확대된 셈이다.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다자녀 가정도 자녀별로 활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광주에서 시작된 10시 출근제는 전국 각지로 퍼졌다. 2024년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우수정책으로 소개되며 경상북도, 전주시, 수원시 등이 잇따라 벤치마킹했다. 그 해 7월 충남도청에서 열린 협력회의에서는 강기정 광주시장이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며 전국 확산을 제안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효과적인 대책”이라 평가해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2025년 9월에는 마침내 정부 정책으로 확정됐다. 이재명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육아기 10시 출근제’를 반영하면서, 2026년부터 국가사업으로 확대 시행된다. 정부는 적용 대상을 초등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까지 넓히고, 지원 기간도 최대 1년으로 늘렸다. 기존 광주 모델의 ‘2개월 지원’보다 훨씬 강력한 제도로 발전한 것이다.
광주시는 이 제도를 통해 가족친화 직장문화를 정착시키고, 저출생 대응 정책의 전국적 선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2023년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근로자의 90%, 사업주의 91%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30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한정돼 있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프리랜서 성격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예산 규모 역시 제한적이라 실제 필요 인원에 비해 충분히 지원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또한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단순히 인건비 지원을 넘어, 기업 문화 전반에 ‘돌봄 친화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사업주나 동료 직원들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 눈치를 보며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10시 출근제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려면 제도 확대와 함께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더 큰 틀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근로자의 권리 보장, 기업의 가족친화 경영, 지역사회의 공동 돌봄 문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가능하다.
2026년부터 국가 정책으로 시행될 ‘육아기 10시 출근제’는 주 4.5일 근무제 논의와 맞물려 더 큰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유아기 자녀를 둔 학부모까지 대상이 확대되면서, 출산과 양육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경제활동 지속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