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AI로 도약…디딤돌&걸림돌] (2) “전력 먹는 하마” 감당 가능한가
전력자립도 9.3%…‘AI 수도’ 치명적 약점 120MW 확보? 컴퓨팅센터 한곳 도시 전력 10% 소모 ‘에너지 고속도로’ 송전탑 건설 주민 갈등 불씨 내포
광주가 국가 AI 시범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AI 집적단지 조성, 국가 AI데이터센터 가동에 이어 AX 실증밸리 조성이 예타 면제를 통과하면서 `AI 수도’라는 이름이 구호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전력과 물 자원 수요, 환경과 주민 수용성 문제, 전국 지자체와의 컴퓨팅센터 유치 경쟁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AI 패권을 쥐는 것이 곧 지역의 미래와 직결되는 만큼, 광주가 지속가능한 AI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반 인프라 확충과 환경·사회적 갈등 해소가 관건이 되고 있다. 본보는 광주가 해결해야할 과제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의 발전을 위해선 막대한 전기가 필수적이다. 광주시는 AI 2단계 사업인 AX 실증밸리에 이어 국가AI컴퓨팅센터 유치까지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 산업의 심장을 붙잡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발목을 잡는 건 전력이다. 2023년 기준 광주의 전력자립도는 9.3%로 17개 시·도 중 16위 수준에 해당한다. 전력 생산은 841GWh인 반면 소비는 9083GWh로 외부 전력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전남 해상풍력·영광 원전 등과 연계가 끊기면 자체로 버틸 힘이 없다.
문제는 AI 시대가 고도화될수록 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된다는 점이다. 현재 광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국가 AI데이터센터의 가동률은 50% 수준이지만 100%에 가까워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전력이 소모돼 전력자립도 최하위 수준인 광주가 ‘전력 먹는 하마’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연간 460TWh(테라와트시)에 달한다. 프랑스나 독일 한 나라 전체 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2026년에는 두 배를 넘어 1050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력 부족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고, 아일랜드의 경우 전체 전력 소비의 20% 이상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해 정전 경고가 두 차례 발령되기도 했다.
원전·재생에너지 의존 불가피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형 포털사가 경기도에 지은 데이터센터는 최대 270MW의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이는 인구 106만 도시 고양시 가정 전체가 한 달간 쓰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최근엔 전남에서 추진 중인 3GW급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가 서울시 전체 주택용 전력 소비량에 필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남의 경우 전력자립도가 197.9% 수준이다.
하지만 광주의 전력 사정은 녹록지 않다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 지역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광주의 전력자립도는 9.3%로, 서울(10.4%)보다 낮고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에 머물렀다. 연간 전력 생산량은 841GWh로 전국 최하위권인데, 소비량은 9083GWh에 달한다. 사실상 외부 송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현재 운영 중인 국가 AI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약 1만 2736MWh, 시간당 1.45MW 수준이다. 이는 아직은 소규모라 감당할 수 있지만, 가동률이 100%에 가까워지고 GPU(그래픽처리장치) 사용이 늘어나면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광주시가 컴퓨팅센터 유치를 위해 내세우는 전력 확보 규모다. 광주시는 한국전력과 협의해 1단계 40MW, 2단계 120MW까지 전력 공급 가능성을 검증했다고 밝히고 있다. 120MW는 광주 연간 전력소비량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대형 컴퓨팅센터 한 곳이 광주 전체 전력의 10분의 1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낮은 전력자립도를 감안하면 광주 자체적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결국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나 전남의 재생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는데, 지속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자력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주·전남 지역의 환경단체는 탈원전 기조가 강해 갈등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에너지 고속도로의 실상이 전국 각지에 34만 5000볼트의 초고압 육상 송전선을 건설해 전력을 공급하려는 계획이어서 제2의 밀양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한전은 비상발전기를 포함한 예비 전력 대책으로 전력 부족 시 무급유 기준 최대 27시간 전원 공급 가능하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어서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사회적 합의 없인 ‘빛 좋은 개살구’ 우려
AI 인프라는 지역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지만, 전력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데이터센터와 컴퓨팅센터가 가동률을 높일수록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결국 시민 생활과 직결된 전기요금 인상이나 정전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AI 수도’를 자처하며 국가 AI컴퓨팅센터 유치를 서두르는 것은 지역 산업 지형을 바꾸려는 승부수지만 지금과 같은 전력 구조에선 난항이 예상된다. 원전·재생에너지 비중, 송전망 확충, 주민 수용성이라는 난제를 풀지 못하면 AI는 ‘희망’이 아니라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국가 AI데이터센터의 경우에도 근무인력이 총 25명으로 이 가운데 보안, 미화직을 제외하면 AI 전담 인력은 훨씬 줄어든다. 이처럼 고용 창출 효과도 미미하고, 세수도 재산세 외에는 크게 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AI 기술의 고도화를 위한 인프라는 필수적인 현실이어서 이를 잘 유지·관리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 패권을 쥐는 것이 지역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지, 전력난을 불러오는 족쇄가 될지는 결국 전기를 어떻게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강수훈 광주시의원은 “AI컴퓨팅센터 유치는 광주와 전남이 함께 추진해야 할 연계형 프로젝트다. 광주만 놓고 보면 전력자립도가 낮지만 광주와 전남을 함께 바라보면 이곳은 대한민국 최대의 전력 벨트 중심지다”며 “광주와 전남은 전국 유일하게 공동 유치라는 모델을 선택해 모든 지역이 탐냈던 한전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광주·전남 전력 공동체 모델을 제시하고 송전망과 변전소를 대폭 확충해 ‘에너지 고속도로’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훈 기자 hu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