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면 자유롭기를, 또 아껴주기를.

[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2025-10-13     담

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시내 모습.  드림투데이 자료사진.

 “A언니랑 B언니랑 레즈래.”

 “레즈가 뭔데?”

 “아, 왜 여자랑 여자랑 그러는 거….”

 충격이었다. 여자랑 여자가 사귈 수도 있구나. 동시에 야릇한 기분이 스쳤고, 이유 모를 질문이 떠올랐다. ‘어 혹시 나도?’

 집에 돌아와 넷북을 켜고 포털에 ‘레즈비언’을 검색했다. 낯설었지만 끌렸다. 그 뒤로는 의식되기 시작했다. 머리칼을 쓰다듬는 친구의 손길이, 티셔츠 너머의 곡선이. 하지만 꿈에서 인기 래퍼와 데이트도 하고, 축구부 오빠의 슈팅 포즈에 두근대기도 했으니까 남자를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다른 가능성은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가 바이섹슈얼임을 알았다. 배고프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렇게 알았다.

 대학에 갔다. 오픈리 게이가 많았다. 레즈비언도,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MTF 선배의 환심을 사려고 친하지도 않으면서 ‘언니’라고 불렀던 민망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곳에서 첫 연애를 했다. 비교적 안전한 학과 분위기였지만 자신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다. 애인은 보이는 곳에선 손잡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미숙한 나는 그런 그를 답답해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종종 다퉜다. 우리의 연애는 그러자고 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비밀연애였다.

 어느 날 직장 동료가 트랜스젠더로 패싱되는 사람한테 성정체성을 물어봐도 되겠냐고 질문했다. 나는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질문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건강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굳이요?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이미 말했겠죠. 꼭 물어볼 필요가 있나요?” 감각적으로 그의 말이 옳다고 느껴졌다. 때로는 질문하지 않는 것도 예의다. 그간 나는 당사자라는 방어막 뒤에 얼마나 뭉툭했던가.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었다.

 요즘은 헤테로 연애를 하고 있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입을 맞추고, 가족들에게 ‘남친’이라는 쉬운 말로 애인을 소개한다. 숙박업소를 함께 가든, 음식점에서 커플 세트를 시키든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원한다면 결혼도 할 수 있겠지. ‘그’와의 연애가 순조로울 때, ‘그녀’와의 연애가 어려웠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본질적인 이유는 없다.

 KBS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한 출연자가 자신을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라는 정체성이 밈으로 남아있다. 처음엔 나도 얼핏 과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러나 최근 범성애자가 아닐지 고민하며, 자신을 설명하고픈 마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스스로와 가까운 말을 찾고 사용하는 건 누구에게나, 특히 소수자에게 중요한 일 같다.

 ‘민주주의의 도시’ 광주로 왔지만, 정작 내게 어울리는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만나고 조금씩 이곳에 정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광주에 남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조직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역에서 자리를 만들고, 지켜오고, 나에게도 한 귀퉁이를 내어준 사람들에게 참 감사하다.

 축제에 모이는 우리는 강하고, 신나고, 자랑스럽다. 올해 광주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무등: 무지갯빛 절대평등’이다. 무등(無等)이란 등급이 없다는 뜻이다.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만나왔고, 만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면 자유롭기를, 또 아껴주기를.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그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