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향 밤낮없어…작은 위로와 격려 보내

[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84) 황금빛 가을향기, 금목서 작은 꽃송이서 뿜어내는 걍력한 향기

2025-10-16     김영선
금목서.

 가을이 깊어갈 무렵, 남도지역의 사찰이나 아파트, 공원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불어온 달콤한 과일 향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될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화려한 꽃은 보이지 않지만, 이 매혹적인 향기의 근원은 바로 작고 겸손한 주황빛 꽃을 피운 금목서이다. 이 향기는 단순한 냄새를 넘어,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매개체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꽃송이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향기는 주변 공간을 가득 채우며, 이 계절 밤낮없이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듯하다.

금목서.

 금목서(金木犀)는 그 이름에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금(金)’은 꽃의 황금빛을, ‘목(木)’은 나무임을, ‘서(犀)’는 코뿔소를 의미하는데, 이는 나무껍질의 질감이 코뿔소 가죽처럼 거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향기가 워낙 강렬해 ‘만 리를 간다’는 뜻의 ‘만리향(萬里香)’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학명은 오스만튜스 프라그란스 바 아우란티아큐스(Osmanthus fragrans var. aurantiacus)이다. 속명인 오스만튜스(Osmanthus)는 그리스어로 ‘향기(osme)’와 ‘꽃(anthos)’의 합성어이며, 종소명인 프라그란스(fragrans)는 라틴어로 ‘향기로운’이라는 뜻이다. 학명 자체가 ‘향기로운 꽃’의 의미를 반복하며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금목서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으로 보통 3~4m 높이로 자란다.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상록성 활엽작은키나무로 가죽처럼 두껍고 짙은 녹색 잎 사이로 9월에서 10월 사이, 지름 5mm 남짓한 아주 작은 등황색 꽃들이 빽빽하게 모여 핀다. 가지는 털이 없고 연한 회갈색이다. 잎밑과 잎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거나 거의 밋밋하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피며 지름이 5mm 정도이다. 꽃이 질 때쯤 콩과 비슷한 녹색의 열매를 맺는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 경남, 전남 지역의 따뜻한 곳에서 관상용으로 식재한다.

금목서.

 금목서의 정수는 그 향기에 있다. 잘 익은 살구나 복숭아를 떠올리게 하는 달콤하고 풍부한 과일 향은 자연이 빚어낸 가장 완벽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독특하고 매혹적인 향기 덕분에 금목서는 고대로부터 세계적인 향수 산업의 핵심 원료로 사랑받아 왔다. 특히, 전설적인 향수 ‘샤넬 No.5’의 원료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는 금목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과학의 힘으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금목서 추출물에 항산화 및 미백 효과가 뛰어난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항노화 기능성 화장품의 핵심 원료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야생의 작은 꽃에서 추출한 정수가 세련된 향기와 기능성 화장품의 심장이 되는 과정은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빚어낸 경이로운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금목서는 땅 위에 피는 꽃을 넘어 하늘의 신화와 인간 세상의 염원을 잇는 상징적인 존재다. 중국의 고대 신화 속 달에는 거대한 계수나무(桂樹) 한 그루가 자라는 데, 이 나무가 바로 목서를 가리킨다. 이 나무 아래에는 불사의 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여신 항아(姮娥)와 영원히 나무를 베는 형벌을 받은 오강(吳剛)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 때문에 금목서는 매년 가을, 달이 가장 밝게 빛나는 중추절(추석)의 중심 상징이 되었다. 지상에서도 금목서는 사랑과 낭만, 그리고 학문적 성공과 출세를 상징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그 강렬한 향기가 부처님께 올리는 최상의 공양물인 ‘향공양(香供養)’으로 여겨져, 속세와 해탈의 세계를 잇는 거룩한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금목서.

 그 달콤한 향기는 지구가 보내는 가장 아름답고도 서글픈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금목서는 추위에 약해 따뜻한 남쪽 지방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남쪽의 꽃이 점차 북쪽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과거 남해안이 북방한계선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북 군산을 넘어 중부지방에서도 노지 월동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향기로운 꽃들의 북상 이면에는 지구 온난화라는 냉정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금목서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넘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와 같은 살아있는 지표가 되었다. 지금 이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금목서의 달콤한 향기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면, 잠시 눈을 감고 그 향기를 깊이 들이마셔 보길 권한다.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신화와 광활한 대륙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황금빛 세계와 미래를 향한 자연의 메세지가 함께 담겨 있을 것이다.

금목서.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