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두려움 없는 ‘라텔’
[동물과 삶]
거드렁 거드렁 아프리카 초원과 사막을 마치 제 것인 양 거들먹거리며 쿵쾅쿵쾅 달려가는 동물이 있다. 사바나의 왕 사자도, 스나이퍼 표범도, 그처럼 당당하게 걷진 않는다. 늘 그보다 센 경쟁자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물인 모기나 진드기 한 마리도 그들에겐 언제나 치명적인 킬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초원에선 누구나 몸을 사린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조심성이라곤 일도 안 보인다. ‘될 대로 돼라. 인생 뭐 있어’하는 식이다. 영어론 간단히 ‘I don’t care!’란 말로 그들을 대표한다.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로 기네스북에 공식 올라있기도 하다.
그는 다큐 한 장면으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버렸다. 어느 날 그가 사방을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다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람도 물리면 30분 안에 죽는다는 ‘블랙맘바’ 독사와 길에서 마주쳤다. ‘오! 맛있는 먹이!’ 그는 보자마자 거침없이 맘바에게 달려들었고 맘바 역시 그 특유의 공격 본능으로 강력한 독니를 드러내며 맞서 싸웠다. 결국 둘 다 큰 독상과 외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만일 독수리 떼라도 무방비의 그들과 마주쳤으면 바로 어부지리의 상황이었을 테지만 다행히 한 시간 정도가 무사히 흐르고 둘 중 누군가에게서 살짝 미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꿈틀꿈틀하더니 어느새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 옆에 죽은 맘바를 머리부터 껌처럼 질겅질겅 깔끔하게 씹어먹고 나선 오던 길을 유유히 돌아가는 것이었다. ‘와! 서프라이즈!’ 그걸 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한 방에 매료되었다. 그의 이름은 ‘라텔’! 우리말로 ‘벌꿀오소리’는 어느새 판다만큼 동물계의 급 스타로 부상했고 아직도 그 장면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역시 라텔! 그는 사자나 하이에나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보다 천 배나 큰 코끼리에게도 거침없이 달려들기도 하면서 날마다 새 파이팅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그 누구라도 그를 건드리면 ‘그래! 한바탕하자!’고 달려든다. 미처 예상치 못한 그의 기세에 눌려 사자도 표범도 그를 멀리 피해 다닌다. 물론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조그만 쟤랑 싸워봤자 괜히 쪽팔리니까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라텔은 덩치들과의 찐싸움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 안의 활화산같이 부글부글 끓는 아드레날린이 그의 특유의 전투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덤비기만 해봐. 우리 둘 중 하나는 가루가 되도록 싸워 주마!’ 그런 식의 보이지 않는 위협을 온몸으로 풍긴다. 더구나 그의 고기나 냄새도 실제 고약해서 정말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기도 한다.
아프리카에는 그를 꿀로 인도하는 새도 존재한다. ‘검은목벌꿀길잡이새’는 라텔을 따라다니며 벌집이 있는 곳에서 울음소리를 내어 그를 인도 한다. 마치 매사냥꾼의 시치미 없는 매 같은 존재이다. 물론 자연에 공짜는 없다. 그 새가 잘 안내를 해주면 라텔은 달콤한 벌꿀을 취하고 이 작은 새들은 그가 남긴 꿀과 유충 그리고 벌집 조각으로 풍요의 파티를 벌인다. 서로에게 전혀 손해 없는 아니 그야말로 대박치는 방식이다. 이런 고마운 새임에도 불구하고 시크한 라텔은 그의 꿀 파티가 끝나면 그 새에게 눈인사 한번 안 보내고 획 돌아가 버린다. 뒤에 남은 새는 ‘그래! 뭐. 고마운 건 됐고!’하고 혼자서 되뇔 뿐이다.
라텔은 생김새도 참 독특하다. 아니 멋있다! 얼굴은 마치 작은 불독 같고 그 외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얀 망토 털을 두르고 있다. 마치 바이킹 전사가 북극곰 털을 둘러쓰고 있는 모양새다. 그의 모습이 워낙 독특해서 키는 조금 작지만, 체구가 당당한 스포츠 스타들은 이런 라텔의 모양을 무척 닮고 싶어 한다. 음바페나 발로텔리 같은 유명 축구 스타들이 이런 라텔 형 머리 물들이기를 무척 좋아한다. 또 자연스레 이런 모양을 따라 하는 동물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초원의 질주왕 치타가 그렇다. 다 큰 치타는 물론 그런 일 없지만, 새끼 치타들은 이마부터 꼬리까지 일정 기간 위로 치솟은 하얀 갈기를 달고 다닌다. 풀숲에 위장도 되지만 사자들이 슬쩍 쳐다볼 때면 마치 라텔이 위장한 듯 보이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에이! 저 녀석 만나면 피곤해. 일단 피하자’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의태 디자인인 것이다.
어제는 표범하고 싸우고 오늘은 코뿔소와 한판 뜨고 내일은 왕도마뱀일 수 있다. 라텔은 매일 매일이 모험의 연속이다. 위험하지만 마치 액션영화 같은 그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세상! 솔직히 한 번쯤 동경해 봄 직하다. Honey badger doesn't care!
최종욱 <수의사>
▲벌꿀오소리(Ratel, Honey badger, 라텔, 꿀먹이오소리 )
- 학명 : Mellivora capensis
- 분류 : 척삭동물 > 포유강 > 식육목 > 족제비과 > 벌꿀오소리속 > 벌꿀오소리 > 12아종
- 크기 : 머리와 몸통 길이 60cm, 꼬리 길이 20cm, 수컷은 9~16kg, 암컷은 5~10kg 정도
- 식성 : 잡식성 : 과일, 알뿌리, 파충류, 알, 전갈 등
- 수명 : 야생 평균 7~8년, 최대 24년까지 살기도
- 서식지 : 주로 아프리카 반건조 지대, 산림이나 초원,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인도, 네팔,
중동 일부 국가, 투르크메니스탄 등
- 번식 : 연 2회, 한배에 보통 2마리의 새끼 출산. 임신기간은 평균 180일
- 천적 : 사자, 하이에나, 표범
- 멸종위기등급 : 최소관심(LC, Least Concern, 출처 : I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