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마케팅 이야기] 영화 ‘여인의 향기’서 배우는 향기 마케팅
감정·기억·정체성 아우른 감성 커뮤니케이션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알 파치노 주연으로 1992년에 개봉되어 크게 히트했다. 주인공 슬레이드 중령은 전쟁 중 시각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후각이 발달했으며, 향기로 여자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번은 식당에서 처음 만난 도나라는 여성에게 다가가 함께 탱고를 추자고 제안한다. 그는 탱고를 함께 춘 여인의 냄새만 맡고도 그녀가 어떤 비누와 향수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맞춘다. 그에게 향기는 단순한 후각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온기”였다. 그는 향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느끼며 살아간다.
향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뉴욕에 사는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와 그의 친구들이 일상 속의 사소한 사건과 인간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유명한 시트콤 『사인펠드 (Seinfeld)』 에서도 향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등장 인물 중 크레이머는 바다의 향기가 나는 ‘The Beach’ 라는 향수를 발명한다. 제리는 그에게 캘빈 클라인의 마케팅 담당자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해보라고 권유하고, 크레이머는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담당자는 이를 비웃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캘빈 클라인은 ‘The Ocean’ 이라는 향수를 출시한다. 특허가 없던 크레이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놓인다는 스토리이다.
인간의 생활은 냄새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향기와 관련된 무수한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프루스트(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In Search of Lost Time)』에서는 향기와 기억을 연결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의 향과 맛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무의식적 기억’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상에서도 향기는 끊임없이 활용된다. 돼지갈비집은 일부러 연기통을 입구 쪽으로 내어 고기 굽는 냄새로 지나가는 고객을 자극한다. 식기 세척 세제는 실제 레몬이 들어 있지 않지만, ‘레몬 = 청결’이라는 인식 때문에 인공 레몬향을 추가한다. 영화관의 팝콘 냄새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영화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팝콘 냄새이며, 영화관 수익의 많은 부분이 매점 간식 판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과학적 근거와 향기 마케팅
사람은 약 1만 가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으며, 한 번 경험한 냄새는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험에 따르면 솔향이 나는 연필을 받은 참가자들은 향이 없는 연필을 사용한 참가자들보다 2주 후에도 브랜드를 더 잘 기억했다. 즉, 제품의 향기는 브랜드 기억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특히 후각은 고객의 무의식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제품 판매를 촉진하고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며 브랜드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싱가포르항공은 향기를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대표 사례다. 그들은 ‘Stefan Floridian Waters’라는 독자적 향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항공기 내부뿐 아니라 승무원 복장, 라운지, 기내 타월 등에서도 사용된다.
공항 역시 향기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부다페스트 공항은 승객들의 스트레스 완화를 목표로 보안 검색대 구역에 아로마 향기를 도입했다. 그 결과, 대기 중 불만이 줄고 서비스 만족도는 크게 향상되었다. 호텔 업계에서는 하얏 플레이스(Hyatt Place)가 블루베리와 꽃향기에 바닐라와 머스크 베이스를 혼합한 시그니처 향기 ‘Seamless’를 개발하여 모든 지점에 적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향기 마케팅은 박물관과 수족관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이와학원은 교토에서 지역의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오리지널 향기 ‘다이와의 향기’를 개발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스미다 수족관은 각 구역과 시간대에 따라 향기를 다르게 연출한다. 입구에서는 안정감을 주는 ‘Arobalance’ 향을 사용해 방문객이 여유롭게 관내를 즐기게 하고, 저녁에는 성인층을 위한 ‘Redwood’향으로 전환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계절에 따라 여름과 가을에는 시원한 향, 겨울과 봄에는 달콤한 플로럴 향을 사용해 방문객에게 반복 방문의 이유가 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보이지 않는 마케팅, 향기의 힘
이처럼 향기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산업과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다. 향기 브랜딩을 도입한 기업들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브랜드를 긍정적 향기 경험과 연결하고,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로 돌아가서 보면,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향기를 통해 사람의 매력과 분위기를 느끼는 장면은, 향기가 인간의 감정에 깊이 작용함을 보여준다. 이는 마케팅에서도 소비자의 감정 경험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향기는 기억과 강하게 연결된 감각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특정 향기가 인물이나 순간을 떠올리게 하듯, 마케팅에서도 특정 향기를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기억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향기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영화에서 향기가 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상징하듯, 기업도 향기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설정해 소비자에게 독자적 경험을 제공하고 차별화를 실현한다. 결국 향기는 단순한 후각 자극을 넘어, 감정·기억·정체성을 아우르는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