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 포커스]시도지사 ‘깐부회동’을

2025-11-07     정진탄 기자
6월 25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 이재명 대통령과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등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아이디얼(Ideal·이상적)한 측면이 강합니다.”

1년여 전 기자회견에서 김영록 전남지사가 광주·전남 행정통합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당시 이 말을 들은 기자 내면에선 한바탕 회오리가 일었다.

언필칭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분이 지역 최대 화두에 대한 일단의 생각을 내비치고, 복잡다기한 지역 간 문제를 풀어가는 게 쉽지 않음을, 다시 말해 해법으로 제시되는 행정통합이 이상적 상태에서나 가능할 법하다고 하는 것이 놀랍고 솔직해 보였고, 무엇보다 그간 얽힌 광주·전남 갈등 상황이 일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의 통합이-메가시티이든 특별광역연합이든 행정통합이든-적잖은 진통을 내포하고 있고 어쩌면 이 지역에서 거의 불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지금도 이어지는 와중이다.

두 지역이 뭉쳐야 한다는 데는 새롭게 부상한 AI산업 이해관계, 특별자치단체 구성 갈등, 군공항 이전 난항 등에 대한 해법이고 더 크게는 수도권 공룡에 맞선 생존 대응 때문이다.

광주·전남이 몸집을 키워 내부의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이른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지극히 환영할 목표가 세워져 있음에도 더디게 진행되거나 때론 파열음을 내는 건 왜인가.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 주재 타운홀미팅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광주·전남은 정치적 당위성을 매우 중시하고 이에 매몰돼 있다. 수많은 구국의 투쟁을 겪으며 이에 필수적인 의(義) 사상으로부터 파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기질은 국가 위기 시에는 놀라운 에너지를 표출하지만 치세의 시기, 즉 노멀한 상태에선 자칫 세력 간 대결과 냉대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 타운홀미팅 이후 이제 광주·전남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무엇보다 ‘서비스 정신’이 좋아야 한다. 퉁을 놓고 무뚝뚝해선 사업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한데 지역 내 패턴은 좀체 바뀌지 않고 갈등의 주원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광주·전남 특별광역연합 규약안이 도의회에서 통과하지 못하자 비판이 이어진다. 시의회에선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의 국가 균형발전 전략에 맞춰 신속히 통과시켰으나 도의회는 뭘 꾸물거리고 있냐는 것이다. 당위적으로 맞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행정의 문제를 지극히 행정의 시각에서만 보는 것이다. 도의회는 지금 특별광역연합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게 아니다. 이들이 주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를 들여다보는 부지런함과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설명을 덧붙이면 도농지역이 통합될 때 가져 올 부작용에 대한 트라우마다. 일례로 도의회가 특별광역연합 의원 구성에서 광주시·전남도의 동수 비율을 문제 삼는 것은 단순 숫자싸움이 아니라 혹시 있을 농촌지역 피해 우려, 그래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요구다.

그저 특별광역연합을 조속히 출범시키자는 당위성만으론 소위 진도가 나가기 어렵게 돼 있다는 얘기다. 도의원들은 그간 떠밀려 이런저런 광역사업을 밀어줬지만 돌아오는 건 농촌엔 별로 없더라는 인식이다.

그게 아니라고 도시인(광주)이 아무리 강조해도 상대방 귀엔 잘 들어오지 않는다. 행정 문제가 행정적으로, 정치 문제가 정치적으로, 경제 문제가 경제적으로 풀리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다. 융복합을 말하면서 삶의 현장에선 한쪽 영역만 집요하게 밀고 가면 되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 마음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누가 먼저, 왜 나서 그 마음을 얻는 일을 해야 하는지, 즉 주체 설정부터 그렇다.

이것이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행정통합이 아이디얼하다는 김영록 지사의 지적과 닿는 지점이다. 더군다나 당위적 측면을 앞세우는 광주·전남인의 경우엔 더 그럴 수 있다.

그러면 그 경계를 허물 방법은 없는 걸까.

이재명 대통령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모형)을 깜짝 선물한 방식에 힌트가 있다. 금관 제공은 아첨이 아니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며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방식이다. 정치경제적 문제에 대한 심리적 접근, 해법인 셈이다.

여기서 좀 더 발전하면 ‘깐부치킨’ 회동으로 나아간다. 도심 치킨집 통창을 배경으로 공개적으로 만나 ‘소맥 건배’를 외친 글로벌 기업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허심탄회했는가.

당장 상상해보라. 김영록 지사와 강기정 시장이 두 지역 중간지점, 나주 혁신도시에서 막걸리와 홍어(홍탁삼합)를 놓고 깐부회동하는 모습을. 뭇 전국 광역단체장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지역민은 물론이고 공무원들도 새삼 밀착하는 순간이다.

또 한 예로 두 지역 공무원, 광역의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마음 체육대회’를 혁신도시 어디쯤에서 열어보는 것이다. 딱딱한 자세를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고, 서로 접촉하고 대화하는 장이다.

이런 형태의 마음 열기는 ‘하면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류가 아니다. 막힌 지역 현안을 다르게 풀고 활력을 불어넣는 필수코스다. 아직 AI는 이런 걸 생각하지 못한다. 지역민이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정진탄 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