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한글, 콘텐츠로 여는 'K-문화 수도 전주'
"소리·한글 기반 콘텐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도시를 만들 것"
전주가 K-문화 수도로 가는 청사진을 그렸다.
13일 오전 10시 완판본문화관에서 '소리와 한글, 콘텐츠로 여는 K-문화 수도 전주' 세미나가 열렸다.
단풍이 물든 완판본문화관 마당에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기와지붕 처마 끝에 걸린 현판 너머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붉은 단풍나무와 황금빛 은행나무가 조선시대 출판문화의 중심지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K-문화의 미래를 논한다는 것은 상징적이었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전주시(시장 우범기)와 전주시정연구원(원장 박미자)이 공동주최한 이번 세미나에는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최락기 전주문화재단 대표, 김병오 전주대 교수 등 문화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환영사에서 "전주의 소리와 한글 문화 자산을 디지털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K-콘텐츠 원천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전문가들의 아이디어가 모여 소리·한글 기반 콘텐츠를 가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도시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미나는 K-소리와 기술의 융합 K-콘텐츠의 미래, 전주시 한글 자산 완판본의 산업화 및 세계화 전략 전주시 전통문화기반 K-콘텐츠 비젼방향과 과제등 3가지 주제로 발제됐다.
첫 주제를 발표한 이춘구 향약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월오봉도 등 전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데이터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생성형 AI 기술과 융합해 콘텐츠 AI 산업화를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전주가 보유한 방대한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안준영 완판본문화관장은 심각한 문제를 지적했다. 완판본 소설의 바탕이 되는 목판 원형이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목판을 복원하고 한글 자체를 확보해야 산업화와 세계화의 저력을 마련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 조성, 완판본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고출판 단지 특화 산업 추진을 제안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홍성덕 전주대 교수는 조급함을 경계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는 꾸준히 인재를 양성하고 일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주 K-콘텐츠 성공을 위해서는 행정적 성과보다 지속 가능한 성과에 집중하는 거버넌스 체제가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는 전주 시민이 행복한 콘텐츠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성국 전주시의원은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지역 예술인부터 시작해 지역 자원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으로 소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최소한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창한 계획보다 실질적 지원이 우선이라는 목소리였다.
완판본문화관은 조선시대 전주에서 발간된 서적들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한글 소설의 대중화에 기여한 완판본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K-콘텐츠 비전을 논의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선시대 한글 출판의 중심지가 21세기 K-콘텐츠의 발원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주는 판소리, 한지, 한옥, 한식이 살아 있는 도시다.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로 불린다. 문제는 이 자산들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느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세 가지 방향이 제시됐다. AI 기술과의 융합, 원형 복원과 세계화 전략, 그리고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구축이다.
윤재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