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 현장, 복원 문턱서 ‘멈춤’

피와 생명 나눈 옛 적십자병원·구묘지, 국비 확보 못해 옛 도청도 복원 후 운영 주체 미정…역사 되살리기 진통

2025-11-17     유시연 기자
지난 5월 임시 개방됐던 옛 광주 적십자병원. 광주시 제공.

 1980년 5월의 흔적을 간직한 5·18 사적지들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한 길목에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광주시는 옛 적십자병원과 구묘지, 옛 전남도청 등 5·18의 역사가 담긴 주요 현장을 보존·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국비 누락과 운영 방안 미확정 등으로 진척이 더딘 것.

 5·18 사적지 11호인 옛 적십자병원은 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이 피와 생명을 나누던 곳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부상자를 치료했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 행렬을 이뤘다. 그러나 병원은 세월이 지나며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쓰이다가 재단 비리 등으로 2014년 문을 닫은 뒤 10년 넘게 폐건물로 방치돼 왔다.

 광주시는 최근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내부를 리모델링해 ‘트라우마 치유센터’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헌혈센터와 응급실·진료실 보존 공간, 인공지능 기반 트라우마 치유 실증센터 등을 마련할 계획이며 오는 19일 시민 공청회를 열어 이같은 보존·활용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옛 적십자병원 활용 사업은 국비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2020년 병원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지만, 예산 확보와 지역사회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방치돼 있다.

 이는 24호 사적지인 5·18 구묘지도 상황이 비슷하다. 구묘지는 1980년 5·18 당시 희생자들이 묻혔던 곳으로, 국립5·18민주묘지 조성 이후 가묘 형태로 복원됐다. 이후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되면서 민주화 성지로 자리 잡았다.

 광주시는 구묘지를 ‘민주공원’으로 재정비해 추모와 기념 공간으로 만들고 국가 차원의 역사교육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지만, 이곳 역시 국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광주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 심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5·18 구묘역 민주공원 조성(12억 원), 옛 적십자병원 복원(17억 원) 등 12개 현안 사업의 추가 반영을 목표로 예결위 소속 의원과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복원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가림막이 사라진 옛 전남도청.

 이와 함께 5·18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도 내년 1월 복원을 마친 후 5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운영 주체와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복원 이후 방향성이 불투명하다.

 기존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옛 전남도청 본관·별관 등을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분류해 운영해 왔으나, 복원 이후에도 전당이 운영을 맡을지, 별도 기관으로 분리할지를 두고 시민사회 내 이견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연말까지 운영될 예정이었던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은 추가 운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행정안전부에 1년 연장을 건의했고, 해당 안건은 국무회의에서 최종 통과를 앞두고 있다.

 또 다른 5·18 사적인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가옥도 복원 공사를 마치고 내년 1월 문을 열 예정이다. 현재 내부 전시 콘텐츠 구축이 진행 중이며, 광주시는 이 시설을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시의회에 동의안을 제출한 상태다.

 광주시 관계자는 “5·18 사적지를 복원하거나 활용하는 사업이 이전부터 지속돼 왔지만, 마무리 단계에 있는 사업들이 많고 국비 활동도 이어지면서 최근 더욱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며 “국비 없이는 진행이 어려운 사업들이 있어 관련 부처에 계속 건의하고 있고, 동시에 추진 계획도 꾸준히 세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총 30개의 5·18 사적지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5·18 당시 시민군 집결지였던 광주송정역 광장이 새롭게 지정됐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