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시민을 꿈꾸다

[광주 퀴어 동사무소 에세이]

2025-11-17     표시

 성소수자는 여기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광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합니다.

 연재의 타이틀인 ‘퀴어 동사무소’는 퀴어 시민이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존재’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기록하고 돌보는 공공 공간을 상상하는 의미입니다. 성소수자들은 단순한 정체성 이상의 존재이며, 다양한 차별과 연대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이해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표준시민’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걸 나는 광장에서 직접 보았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 당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시민들. 드림투데이 자료사진

 나는 ‘표시’다. 표준 시민, 퀴어들의 은어인 ‘이쪽 표시’에서 따왔고, 동시에 세상에 나의 작은 흔적인 표시를 남기고 싶단 뜻이기도 하다.

 표준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표준(標準), 일반적인 것. 또는 평균적인 것. 나는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시민이다. 대단하게 도덕적 수준이 높거나 진보적인 인간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처럼 선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딱 그 정도의 사람. 하지만 그런 ‘표준시민’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걸 나는 광장에서 직접 보았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무장 세력의 폭력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주먹밥을 나누고 릴레이 헌혈 운동을 했다. 혼란 속에서도 도시는 국가의 통제나 지휘 체계 없이 스스로 질서를 세웠고 서로를 보호했다. 그래서 5·18 민주화운동은 지금도 세계적인 시민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거대한 불의에 맞선 그 힘은 일사분란한 체계나 권력이 아니라 작은 선의들의 연쇄에서 나왔다.

 2008년에는 이른바 ‘아무말 깃발’을 든 개인 기수들이 등장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은 촛불 시위를 보고 받고 “1만 명이 든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라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배후에 조종 세력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특정한 단체가 표적이 되는 걸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배후는 고양이다’, ‘이 깃발은 아무 의미 없다’ 같은 문구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광장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겨울,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를 두고 당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어차피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라고 조롱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들고 나왔다. 집에 있는 아이돌 응원봉, 장난감 요술봉, LED 촛불이나 무드등까지. 광장은 순식간에 빛의 바다로 변했다. 누군가를 응원하던 손이 이제는 민주주의를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나는 그 꺼지지 않는 불과 깃발의 뒤를 이어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먼저 깃발을 제작하기로 했다. 내가 하는 게임은 결혼 시스템이 있어서 캐릭터들이 결혼할 수 있지만, 동성 캐릭터 간의 결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또 결혼 전까진 성별 전환이 자유롭지만 캐릭터가 결혼하면 성별 전환을 못 하게 막아버린다. 그래서 만들기로 결정한 깃발이 ‘혼인평등연대 에린 지부’. 그게 대한민국이든 게임 속이든 어느 누구도 혼인으로 불평등하지 않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방향을 정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실행이었다. 실존하는 단체의 이름인 만큼 ‘혼인평등연대’에 허락을 구했고 단체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또 게임 공식 로고를 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니 로고 등의 깃발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야 됐다. 나는 디자인 툴을 다룰 줄도 모르며 미술적 재능이 없었기에 난감했다. 유료 커미션 사이트에 사용처와 내 사연을 올렸더니 한 디자이너가 선뜻 재능기부를 자청했다. 그렇게 멀리서도 돋보이고 간결하게 내 의도를 전해줄 도안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실제 깃발 제작이었는데… 다시 난관이었다. 시중에 알려진 깃발 제작 업체들에서 당시 주문이 밀려 번번이 주문이 취소되거나 배송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단 공지를 올렸다. 난감해하던 찰나에 지인이 선뜻 본인이 일하는 출력업체에서 재료비만 받고 당일 직거래 배송(!)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깃발을 받은 뒤 인터넷에서 주문한 조립식 깃대를 챙겨 광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깃발 타공 및 깃대 조립에 애를 먹고 있었다. 한 시민분이 나를 빤히 보고 있기에 나는 자리에 편하게 앉고 싶으신데 내 깃대가 걸리적거렸나보다 하고 정류장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그 중년의 광주 시민분이 “이리 줘봐요. 내가 해줄게!” 하고 호쾌하게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능숙하게 쪽가위로 타공을 하고 조립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이제 버스를 타야한다고 말을 못하고 있는 와중에 그 시민분은 내 목적지가 어딘지 알고 있다는 듯이 “됐응께 버스 타요! 잘 다녀오고!” 하고 완성된 깃발을 내 손에 들려주셨다. 결국 내 깃발 하나에는 수많은 시민의 손이 닿아 있었다.

 광장에 나가면 느낀다. 우리는 사실 그리 특별하지 않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야근하다가, 누군가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그렇게 각자의 일상을 끌고 와 모인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도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기가 세상을 버티게 한다. 완벽한 한 명이 아니라 불완전한 다수가 세상을 바꾼다. 5·18이 그랬고, 촛불이 그랬고, 지금의 광장도 그렇다. 모두 완벽하지 않았지만 모두 함께였다.

 나는 여전히 평범하다. 윤리적인 완벽함 대신 약간의 용기와 유머를 택한 사람. 하지만 그 작은 표시들이 모이면 세상은 생각보다 쉽게 바뀐다. 누군가의 응원봉 불빛, 누군가의 깃발 한 장, 누군가의 주먹밥 한 덩이. 그런 것들이 이어져 광주를 만들었고, 촛불을 만들었으며,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

 세상의 불의는 언제나 거대해서 이기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고 좌절하게 만든다. 나는 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그러나 나는 ‘나’를 믿지 않지만 ‘우리’를 믿는다. 내가 쓰러지면 또 다른 네가 나를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쓰려졌다가도 다시 일어서게 된다. 나는 안다. 평범한 시민의 연대야말로 이 사회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걸.

 글=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