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대하는 삶의 자세] 어느 자이니치(在日) 인문학자의 디아스포라적 사망통지서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

2025-11-18     강은영

 입동(立冬)을 지나 소설(小雪)로 가는 늦가을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 이 계절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문학 서적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선택할 것이다. 이 책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고아하고 격조 있는 문체의 훌륭한 인문학 서적이다. 물론 번역가의 능력에 힘입은 부분도 크지만 본디 서경식의 일본어 원문이 깔끔하고 정갈한 덕분이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듯 아무리 뛰어난 번역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원문이 졸문이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서경식은 빼어난 문장가다. 물론 좋은 기행문은 세상에 널려있다. 그럼에도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가 수작인 이유는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자기 고백서이고, 서양의 미술관을 답사하는데 독자로 하여금 한국과 일본의 현실을 매번 되새기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답사 기행문이나 미술평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산마르코 수도원의 승방을 보고 한국에서 시국사범으로 12년간 갇혀 있던 두 형들의 0.78평 감옥을 생각한다. 때론 고향을 떠나 이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카임 수틴(1893~1943, 러시아 출신의 화과)과 모딜리아니의 불우한 최후에 ‘고향을 등진 자, 조국을 잃은 자’의 절통함을 자이니치(재일조선인)로서 공감한다.

 그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는 미켈란젤로의 「빈사의 노예」와 「반항의 노예」라는 대리석 조각품에 순간 매료되어 미켈란젤로의 노예에게 형들을 오버랩시키기도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80년 광주이며, 「검은 그림」 시리즈 속의 급류에 쓸려가는 혹은 급류에 저항하는 검은 개는 화가인 고야(1746~1828) 이면서 동시에 서경식 자신이기도 하다.

 서경식은 1983년부터 큰 형 서승이 출소하는 1990년까지 벨기에, 프랑스, 아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각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하며 화폭과 조각품에 보이는 단면에서 디아스포라적 자아를 발견하고, 피지배자의 후예가 절대적 소수자로서 지난날의 지배자들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픔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특히 서경식이 샤르트르 성당을 보고 파리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마주한 남유럽계, 중남미계, 북아프리카계의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일찍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밑바닥 노동에 시달렸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부분에서 그의 인식은 일찌감치 재일조선인 문제를 넘어 지구상의 마이너리티의 인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서경식은 1951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어린 시절 양가 할아버지들에 이끌려 일본에 왔기에 엄밀하게 말해서 재일조선인 2.5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조선 출신 부모님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없었지만, 서경식 형제들은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서승과 서준식 두 형은 1971년 당시 각각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와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었다. 1969년 삼선 개헌 이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던 시절, 정부는 대내적 상황을 통제하고 1971년 4·27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냈다. 1971년 4월 20일 육군보안사령부의 발표에 의하면,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하고자 암약해 온 재일교포 유학생 등이 포함된 간첩단 4개 망, 51명이 서울, 부산, 제주 등지에서 검거되었다. 서경식의 두 형이 이 간첩단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1심에서 두 형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서준식은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한편 서승은 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어 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가 1990년 3·1절 특사로 19년의 복역 생활을 마치고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하였다.

 서경식은 1974년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하였지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두 형의 구명운동을 계기로 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되었고, 두 형의 구명운동 중에 이 책을 저술하였다. 1992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비롯해 다수의 사회비평, 인문 교양 관련 서적을 발표했으며,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에서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권론과 예술론을 강의하다 2021년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리고 2023년 12월 18일 72세의 일기로 나가노 자택에서 돌아가셨다. 에세이 「감옥의 형에게 넣어 준 시집」이라는 글에서 서경식은 2006년 2월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나는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고, 시인은 자신의 사망통지서까지 준비해 놓고 홀로 떠나갔다고 슬퍼했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혹시 서경식도 우리에게 사전 사망통지서를 이미 보냈던 것은 아닐까.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가 그가 사전에 보낸 사망통지서는 아닐까. 그는 갔어도 여전히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자들의 고달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시 「6월」이 노래한 유토피아의 이미지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냉소의 대상이 되어 버렸지만, “어딘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을까/같은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친근함과 재미 그리고 분노가/날카로운 힘이 되어 불현듯 나타나는(「6월」중에서)” 서경식이 꿈꾸던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지는 늦가을 오후다.

강은영 전남대 사학과 교수.

 강은영(전남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