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복식 기획전 '결', 한복의 정수를 보여주다
직물에 새겨진 왕실의 권위 비단·빛·시간, 세 가지 결로 풀어내
조선 왕실의 화려함과 격조, 그 비밀이 비단 한 올 한 올에 숨어 있다.
전주시 어진박물관이 오는 20일부터 내년 2월 8일까지 왕실복식 기획전 '결'을 연다. 박물관 지하 1층 열린마당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한복 중에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왕실 복식의 아름다움과 권위를 조명한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복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전통 복식의 진가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이번 기획전은 '비단', '빛', '시간'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각각의 주제는 왕실 복식이 지닌 물성과 미학,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결'이라는 전시명은 직물의 결, 빛의 결, 시간의 결이 하나로 어우러져 완성되는 왕실 복식의 본질을 함축한다.
전시는 신규 소장품인 '이왕가사진첩'과 함께 무형문화유산 침선장들이 제작한 조선 왕실 복식들을 선보인다. 왕실 복식 제작의 맥을 이어온 장인들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이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왕실 복식에 사용된 직물은 단순한 옷감이 아니다. 세밀하게 짜인 비단 한 올 한 올에는 왕실의 위엄과 격식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직물의 특성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조선시대에 왕실 복식의 정보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도설(圖說)을 함께 전시한다. 도설을 통해 관람객들은 당시 왕실이 복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원칙과 체계로 제작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복식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흑백사진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백미다. '이왕가사진첩'에 담긴 사진들은 실제로 왕실 복식을 착용한 황실 구성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진 속 인물들이 입고 있는 복식의 디테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흑백사진이지만 그 속에서 비단의 광택과 자수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100여 년 전 황실의 위엄과 품격이 사진을 통해 현재로 전해지는 순간, 관람객들은 시간을 초월한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형문화유산 침선장들이 제작한 왕실 복식은 전통 기술의 계승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침선(針線)은 바늘과 실을 다루는 기술을 뜻하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장인정신과 미의식이 녹아 있다.
이들이 재현한 왕실 복식은 단순한 복원을 넘어선다. 전통 기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완성도를 높인 이 작품들은 전통문화가 어떻게 계승되고 발전하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기술이 현재의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하재식 전주시 국가유산관리과장은 "APEC 등을 계기로 한복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한복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왕실 복식을 '결'이라는 주제로 풀어 새로운 시각에서 소개하고자 한다"고 전시의 의도를 밝혔다.
최근 국제 행사에서 한복이 주목받으며 우리 전통 복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왕실 복식을 통해 한복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시의적절하다. 하 과장은 "이번 전시가 한복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결'이라는 단어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직물의 올, 사물의 본질적 특성, 그리고 궁극적인 마무리를 뜻한다. 왕실 복식에 담긴 장인의 손길, 세월의 흔적,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만나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전주는 전통문화의 도시다. 한옥마을과 전통 공예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왕실 복식 전시가 열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전통의 가치를 현재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년 2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겨울철 전주를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박물관에서 만나는 왕실 복식의 화려함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
한복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화려한 외형만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정신과 기술, 그리고 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승하는 일이 우선이다. 어진박물관의 이번 전시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재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