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통로
[작은 책방 우리 책들] 엘리베이터(2025, 후즈갓마이테일)
우리는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층간소음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이웃 간의 정이나 만남 따위가 쉽지 않은 시대다. 서로 각자의 집 안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웃 주민들이 얼굴 볼 기회는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인사도 하지 않는 흘끔거리는 시선 정도가 끝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일상의 통로가 되어줄 것은 고장난 엘리베이터 정도일 것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야엘 프랑켈이 그리고 쓴 <엘리베이터>(2025, 후즈갓마이테일)는 만남의 장이 되는 장소로서의 엘리베이터를 그려낸다. ‘나’는 강아지 로코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눌렀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누가 나보다 먼저 눌렀나 봐.” 로코에게 말했지.
내 말이 맞았어.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자,
폴라 아주머니가 서 계셨어.
이런, 아주머니는 개를 무서워하는데….
“안녕? 오랜만이구나.” 폴라 아주머니가 인사했어.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했어.
“멍멍!” 로코도 인사했어.
폴라 아주머니가 1층을 꾹.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또다시 올라가는 거야!
<엘리베이터> 중에서.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주민들을 만난다. 8층에서 미겔 할아버지를, 6층에서 코라 아주머니와 쌍둥이를 만난다. 그렇게 좁은 공간이 북적북적해졌을 때,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린다! 5층과 4층 사이에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폴라 아주머니가 케이크를 꺼내고, 미겔 할아버지가 우는 쌍둥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제목은 ‘아무렴 어때?’. 생일을 맞이해 케이크를 먹는 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장장 40분 넘는 시간동안 그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있었다.
덜커덩, 땡!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멈췄어.
(아무도 단추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나랑 로코가 사는 층이에요!” 내가 말했어.
“좋은 생각이 있어요. 우리 집에 차 마시러 가는 건 어때요?”
(…)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든 말든, 아무렴 어때?
이렇게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걸.”
미겔 할아버지가 말했단다.
<엘리베이터> 중에서.
책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행은 우리를 달라지게 해. 엘리베이터 속 짧은 여행조차도 말이야.” 어쩌면 엘리베이터라는 장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파트 복도에서나, 공용 놀이터에서나, 화단 앞 짧게 걸을 수 있는 공간에서나, 우리는 오며가며 사람들을 마주친다.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케이크를 나누고, 그 나눔을 계기로 집에 상대방을 초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장난 엘리베이터의 40분은 이웃에게 말을 걸 수밖에 없도록 돕지만, 고장나지 않은 엘리베이터의 짧은 이동시간도 나의 한 마디라면 어디로든 여행을 시작하게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추운 바람이 들이치는 겨울이다. 따뜻한 온기를 위해 짧은 여행 떠날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