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차? NO! 유목민의 생명수

[좌충우돌 중국차(茶)] (85) 원가절감 끝판왕 변소차(邊銷茶) 가지째 베어내 제조, 비타민·소화제 역할 생필품

2025-11-25     류광일
흑차의 한 종류인 장차(藏茶)의 속 모습. 가지와 줄기가 그대로 보인다. 이처럼 흑차는 낮은 등급의 찻잎으로 만들었고, 필연적으로 고삽미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단점은 줄기와 가지의 성분이 오랜 시간이 흘러 주수현상으로 대표되는 단맛으로 변하지만, 정작 유목민족들은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특성상 제품을 오래 보관하기 힘들어 그 맛의 변화를 보기 힘들었다.

 흑차는 후발효차(後發酵茶)에 속하며 운남성과 사천성, 호남성, 호북성, 광서성 등지에서 생산된다. 매년 6월 중하순 망종(芒種)을 전후한 시기에 채엽을 한다. 명대에 호남성 안화에서 녹차 찻잎을 악퇴(渥堆)시킨 후 소나무 장작으로 건조하여 차를 만들었는데, 이때 차의 빛깔이 흑갈색으로 변하여 흑차(黑茶)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흑차는 대부분 티벳이나 내몽고 등의 변방 지역에서 소비되어 “변소차(邊銷茶)”라고 불렸고, 육보차와 육안남차와 같은 일부분의 흑차는 중원 지역에서 생산, 소비되던 고급 품질의 차이다. 변방에서 소비되던 변소차는 △신선한 채소나 과일이 부족하던 유목민족에게 비타민C를 공급해 주는 중요한 영양공급원이자 △고기와 젖 위주의 식생활에서 오는 소화불량을 해소하고 △이런 음식에서 나오는 느끼함을 없애 주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과거 변소차의 소비자였던 유목민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자면, 중원 내륙에서 마시는 차는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게다가 중원에서 생산하여 변방까지 길게는 편도 2~3개월씩 걸리는 유일무이한 운송 수단이었던 마방(馬幇)의 인건비는 낮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그들이 마시는 변소차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차의 등급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원에서는 이른 봄부터 채엽을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흑차는 찻잎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지째 베어내는 방식으로 채엽하였다.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은 소엽종 차나무 가운데서도 찻잎이 큰 품종을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큰 찻잎을 얻기 위해 품종개량까지 부단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현재도 변소차에 쓰이고 있으며, 이는 소엽종 가운데서도 20㎝에 달하는 대엽종에 속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소엽종 가운데서 대엽종이라는 것이지 분류상의 대엽종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적자(茶摘子). 사진에 보이는 끈을 손가락에 감아 고정 시킨 후, 손바닥 전체로 가지를 잡아 베어낸다. 필요한 차나무의 작은 가지를 베어낼 때 유용한 도구이다. 끈 대신 가운데 부분에 동그란 고리가 달려 손가락을 끼울 수 있게 만든 제품도 있다. 사진출처: CCTV 화면 갈무리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략 20여 년 전인 2004년 중국에서는 보이차 열풍이 불었고, 그 무렵을 기점으로 보이차를 비롯한 흑차는 오래될수록 좋아진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들은 운남성뿐만 아니라 흑차가 유통되던 사천성, 청해성, 티벳 등지의 변방을 돌며 각 가정에서 여러 사정으로 마시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해둔 흑차를 헐값에 가져다가 중원에 비싼 값으로 팔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차 사냥꾼”이라는 뜻의 엽차인(獵茶人)이라고 불렀다. 아무튼 이들 가운데 초기에 나선 사람들은 괜찮은 물건들을 가져다 팔았지만, 뒤로 갈수록 보관 상태가 불량한 환경에서 나온 상당수의 저급한 습창차가 유통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몇년에 걸쳐 엽차인들이 구석구석을 뒤지고 나서 소위 습창차마저 동이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가짜 노차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양피(羊皮)로 싸인 흑차 혹은 보이차 등이 그러한 제품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가죽으로 포장된 차를 보거든 무조건 믿고 거르시라. 가죽은 통풍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특유의 동물성 냄새로 인하여 차의 보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운남의 보이차 역시도 흑차에 속한다. 십수 년 전 보이차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보이차는 일반 흑차에 비해 찻잎의 크기가 더 큰 대엽종으로 제다를 하였다. 이러한 보이숙차의 제조 방식은 대엽종에 맞게끔 발전시킨 조수악퇴(潮水渥堆)의 특수한 공법을 사용하므로, 일반적 규범의 흑차와는 다르게 재가공차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보이숙차의 제조 방식 역시도 흑차와 홍차의 발효에서 차용해 온 것이기에 후일 그 논란은 시나브로 사그라들게 되었다.

 흑차를 만드는 찻잎은 대부분 1아4엽~1아6엽이다. 따라서 흑차에는 일정한 양의 늙은 찻잎과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흑차의 기본 제다 과정은 살청-유념-악퇴-건조이고, 이 가운데서 악퇴는 흑차 가공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악퇴는 비효소성(非酵素性) 화학변화를 촉진 시키고, 기름진 흑색(油黑) 혹은 갈녹(褐綠)의 외형과, 갈흑(褐黑) 혹은 갈홍(褐紅)의 탕색을 형성시키고, 순화(醇和)한 구감을 만들어주기에 예로부터 후발효차(後發酵茶)라 칭해졌다.

 류광일(덕생연차관 원장)

류광일 원장.

류광일 원장은 어려서 읽은 이백의 시를 계기로 중국문화에 심취했다.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덕생연차관 주덕생 선생을 만나 2014년 귀국 때까지 차를 사사받았다. 2012년 중국다예사 자격을, 2013년 고급차엽심평사 자격을 취득했다. 담양군 창평면 덕생연차관에서 차향을 내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