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아이, 가난한 여대생이 늑대인간과의 사랑 속에서 낳은 아이를 키워가는 삶을 그린 영화. 주인공은 여성, 한 부모 가정, 가난한 청년, 사회적 소수자, 난민 등 우리사회 약자들을 중첩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이 영화는 늑대도 인간도 아닌 경계에 놓인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까라는 주인공의 고민에 집중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송곳니가 나고 꼬리가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인간 이외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인간의 학교에 보낼 수 없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늑대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으나 자연 상태의 늑대는 이미 멸종되었고, 동물원의 늑대는 동물원에서 태어났기에 무엇 하나 가르쳐줄 수 없다. 게다가 소통방법도 없다. 그녀의 아이들은 난민인 것이다. 종족을 잃고 고향을 잃어버려 되돌아갈 곳이 없는 난민이다.

여성·한부모… 중첩된 사회적 약자

 개인화되고 분업화된 근대도시에서 늑대인간의 아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근대도시는 효율성 추구라는 목적 하에 전통공동체가 해체되고 기존 가족공동체가 담당했던 대다수의 기능들이 분업화돼 서비스 상품이 돼버렸다. 송곳니와 발톱이라는 원초적 감정은 그러한 도시를 지배하는 도구적 이성의 지배적 문법에의해 제거되어야만 하는 이질적 존재이기에 늑대아이는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해체되고 ‘나-모두’만 존재하는 도시에서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문명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녀의 아이들은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주인공은 늑대아이들을 데리고 농촌으로 귀향한다. ‘우리 마을’이란 전통적 공동체가 남아있는 곳에서 그녀와 그녀의 늑대아이들은 마을주민들의 따뜻한 도움 속에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을 뒷받침해주는 지지대는 지극히 허약하기만 한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해당 마을 어른들로 대표되는 전통공동체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얻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이들이 늑대인간이란 사실이 감춰져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통적 마을공동체 또한 그녀의 가족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가 없고 ‘우리’만 존재하며, ‘우리’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질적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전통공동체에서 그녀의 가족에 행복은 살얼음 위의 행복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산 앞에 섰다. 보름달이 뜨면 아이들은 늑대가 되어 산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우연히 만난 늑대들과 뛰어놀았다. 그러나 그녀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늑대가 아닌 늑대인간이었기에 늑대조차 살기 힘든 산으로 그녀의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선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은 아이들이 커나가며 다른 친구들과 다른 자기모습을 자각하며 더욱 커져간다.

답 없는 길, 그러나 천천히 나아가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을 자신의 생각에 동화시키려고 끝까지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려고 시도하였으나 몇 번의 실패 속에 그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폭력이며 완벽한 동화 또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인간과 늑대의 특성을 모두 가진 늑대아이들이 두 특성 모두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 삶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그녀는 천천히 답 없는 길을 나아갔다.

 예맨 난민이 이슈화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늑대아이들의 모습에는 난민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광주교육이 가야할 길에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진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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