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사슴이 귀엽다고 손으로 쓰다듬는다면? 북미의 자연공원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인데, 결과가 충격적이다. 새끼 사슴이 치명적인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는…. 어미 사슴은 처음 몇주 동안 냄새를 통해서만 새끼를 알아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참사다. 일단 손길이 닿으면 사람 냄새가 배어드는데, 이게 오염성이 강해서 새끼 사슴 고유한 냄새를 쓸모없게 만든다. 결국 어미가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방치당한 새끼의 운명은 풍전등화다. 죽음을 부르는 위험한 애정 표현, ‘밤비신드롬’이다.

 국민의당의 “호남 사랑”에서 아기 사슴을 떠올렸다. 사랑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같은 것이다. 같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과 경쟁이 치열해서일까, ‘너 죽어야 나 산다’는 식으로 읽히는 공세다. 거북스럽다. 자신의 존재감 부각은 상대방 흠집내기로 귀결된다. 이 때 상대에게 덧씌우는 기피제가 ‘호남 홀대’론이다.

 국민의당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성토다. 지난해 창당 후 처음 치른 선거인 총선, 올해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의당 호남 전략은 이같은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요즘, 또 홀대론을 꺼내들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내년 예산에서 호남지역 SOC 예산을 삭감했다”는 거다.

 “광주·전남 SOC 예산은 올해 1조4322억 원 대비 24% 삭감된 1조911억 원(내년)으로, 전남 SOC 예산은 16%, 광주 SOC 예산은 무려 54%가 삭감됐다”는 게 국민의당 주장이다.

 민주당은 “내년 정부 SOC 예산이 전체적으로 23% 줄었고, 호남지역 SOC 예산은 16%가 삭감된 것으로 집계된다”며 반론하고 있다.

 국민의당 바람대로 ‘홀대’라는 기피제가 작동하면 ‘새끼 사슴’의 운명은 민주당 몫이 될게다. 반면 “편가르기” “이간질”이라며 ‘홀대론’ 자체를 기피하는 분위기도 강한데, 이 경우엔 국민의당이 ‘새끼 사슴’의 운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 선거때마다 꺼내들다

 1895년, 명성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일제의 낭인들이 경복궁으로 들이쳤다. 왕비는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궁녀복으로 갈아입고 그들과 섞였다. 왕비의 얼굴을 몰라 ‘여우사냥’(당시 일제의 작전명)이 쉽지 않았던 낭인들 눈에 한 궁녀가 눈에 띄었다. 복장은 같았지만, 유독 다른 궁녀들의 필사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광경이 포착된 것. 낭인들은 확신했고, 그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을미사변이다. 맹목적 사랑이 위험한 건 그 대상을 도드라지게 해 노리는 이들에게 표적을 지목해준다는 것이다.

 텃밭 정당의 호남 구애가 불편한 게 이와 무관치 않다. 다른 지역들이 견제를 강화하고 나서는 탓이다.

 최근 취임한 안철수 대표가 첫 지방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택해 5일 동안 머물다간 것은 유례없는 공 들이기다. 안 대표는 지난 12일, 두번째 지방 방문 일정도 전북으로 향했다. “광주·전남 SOC 예산 홀대”를 목청 높인 안 대표는 이날도 전북에서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국민의당의 호남 공세가 이어지자 민주당도 맞대응에 나섰다. 당 지도부가 대거 광주·전남을 찾아 예산 당정협의회를 하겠노라고 공언하고 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한 두 당이 특정지역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펼치는 애정 공세가 이만큼 과열이다. 당장 다른 지역에선 “역차별”을 제기한다. “지역 배려라고 하면 영·호남만 생각하는데, 경기도와 인천은 서울에도 못 끼고 지방에도 치이다 보니 늘 상대적 박탈감이 큰 곳에 속한다.” 경기지역 한 일간지가 전하는 그 지역 민심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이같은 분위기가 내년 지방선거의 ‘호재’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호남 특혜’론을 점화시켜 다른 지역의 표심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이 전국적으로 표적이 될 판이니, 시셈과 견제를 불러온 애정 공세가 달가울 리 있겠는가.

▲구애 공세, 다른 지역에선 반감 표적

 ‘바닷새가 해안에서 날아와 노나라 서울의 바깥에 내려앉았다. 임금은 엄숙한 환영을 명령하여 바닷새를 신성한 경내에 모셔 포도주를 대접하고 악사들을 불러 순임금의 악곡을 연주하게 했으며 소를 잡아 잘 차려주었다. 그 불쌍한 바다새는 음악소리에 어질어질하며 절망하여 죽어버렸다.’ 바닷새를 위한 연주/ 장자의길<토마스 머튼>

 숲에 둥지를 틀고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할 새에게 음악은 흉기였다는 깨우침. 이렇게 어리석은 대접은 임금의 엄숙한 명령이었기에 아무런 의심없이 실행됐다.

 국민의당내 호남 홀대론은 안철수 대표·박지원 전 대표 등 중진들이 앞장서 주창하고 있다.

 임금의 명이니, 새에게 포도주를 대접한 것인가? 악곡을 연주한 것인가? 국회의원들은 물론 최근엔 지방의원들까지 ‘호남 차별론’ 전선에 뛰어들었다. 13일 전남도의회에서 빚어진 파행이 대표적이다. 이날 국민의당 소속 도의원들이 ‘SOC 예산 반영 촉구 건의안’ 상정해 표결을 시도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하고 떠나버려 본회의가 무산됐다.

 “호남 홀대”, 사실을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하면 고마울 일이다. 문제는 논란 제기가 홀대 개선에 있다기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에 그치고 있는 점이다. 그러니 싸움 밖에 안된다.

 제발 호남을 내버려둬라. 때론 애정도 독이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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