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체제’로 이름 바꿔달아
시민의 손으로 가꿔야 더 아낀다

 말장난이 유행인가보다. 정부는 내용은 똑 같은데 이름만 달리 붙이면 마치 다른 것이 되는 냥 하고 있다. 갑의 횡포가 심각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자, 근로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업주와 근로자로 쓰겠다고 한 고용노동부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사용주와 근로자의 권력 차에 있으며, 사용주의 횡포에 맞서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제약되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시정조치는 찾아 볼 수 없다. ‘을’인 노동자가 ‘갑’인 사장에게 부당함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싶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싫으면 나가라는 상황은 변함없는데, 근로계약서 이름 바꾸는 말장난으로 관계가 달라질 것처럼 구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도민영화 계획에서도 이와 같은 말장난이 등장한다. 내용은 민영화인데 ‘경쟁체제’라고 이름만 바꿔달아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다수의 국민들이 민영화란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가격만 올라가는 부당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서 반발감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민영화란 말은 쓰지 않고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한사코 민영화가 아니라며 제출한 계획은 코레일이 설립한 자회사가 수서발 KTX 운영권을 가지는 것인데, 자회사의 지분 가운데 30%는 코레일이 갖고 나머지 70%는 공공연기금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자회사의 지분에 민간이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공공연기금이 소유한 지분은 언제든지 민간으로 팔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철도 노선 자체를 쪼개서 운영권을 분리시키는 시도 자체가 민영화의 길을 활짝 열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정책의 허울 좋은 명분은 방만한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핵심적이다.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서비스 질이 좋아지고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광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노선이 동 시간대에 여러 개가 있고, 그 중에서 싸고 서비스가 좋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경쟁을 통해 서비스가 향상되리라는 주장은 허구적이다.

 그리고 업체들의 경쟁으로 요금이 싸질 것이라는 주장 역시 민간 참여로 건설된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사례만 보더라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지하철 9호선 운영업체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년에 요금인상을 강행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저지되었다. 이처럼 민간회사들은 교통의 공공적인 성격보다는 수익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요금인상을 호시탐탐 노린다. 이뿐만 아니라 민자 고속도로는 통행요금이 비싸고,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하는 등의 문제가 지금도 곳곳에서 발행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가격이 싸진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또한 민영화는 철도 요금이 비싸진다는 문제를 넘어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돈벌이에 급급한 민간업체들이 철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필수인력을 축소하면서 안전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열차를 정비하고 보수하는 인력이 줄어들면 당연히 운행 도중에 고장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도 철도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KTX는 잦은 고장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실정인데 민영화가 되고나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가 요금인상과 서비스 하락을 초래하더라도 철밥통 노동자들로 인한 방만한 운영을 시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철도 운영의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좋은 일자리는 유지되고 확대되어야 할 일이지, 대다수의 일자리가 열악하다고 해서 하향평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도노동자들은 ‘경쟁체제’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영화인 정책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을’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말장난으로 갑을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며 횡포를 부리는 ‘갑’인 정부에게 대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철도를 팔아먹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철도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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