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놀 줄 몰라서 일만 할까?
최저임금 대폭 인상 `악순환’끊어야

▲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고생스럽더라도 열심히 일해야 나중에 고난을 면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개미처럼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는 적당히 놀면서 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다. 너무 열심히 장시간 일하면 기업이 신규채용을 꺼려 고용이 창출되지 않고, 노동자들이 놀면서 돈을 써야 내수도 활성화 되는데 돈 쓸 시간조차 없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도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위해 각종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을 살펴보면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개미가 왜 놀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진단하고 그에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일 텐데, 정부는 노동시간 자체만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무시간을 쪼갠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근무 시간과 형태를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이처럼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 없이 장시간 노동에 대한 정책이 추진되면, 실효성이 없거나 각종 비정규직이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개미도 놀고 싶다. 베짱이처럼 놀 줄 몰라서 심야에도 휴일에도 일하는 것이 아니다. 개미가 놀지 못하고 장시간 일하는 이유는 임금이 너무 적어서 먹고 살 만큼이 되지 않아서다. 적은 임금을 추가노동시간을 통해 보충하고 있는데, 만약 임금은 제자리고 노동시간만 짧아진다면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서처럼 겨울나기는 고사하고 당장의 생활고에 허덕일 판국이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 사례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2600시간으로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인 2100시간 보다 길고, 한국경제에 영향력이 큰 대기업이라서 자주 보도된다. 그러다보니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저임금이라고 지목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도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 때문에 장시간 일해서 다른 사람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 구성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기본급이 낮아서 휴일/심야 노동으로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98년에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를 한 이후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져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 한다는 심리가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시간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업체가 영세하고 임금이 낮을수록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장시간 노동의 대명사로 현대자동차를 거론하지만 실상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저임금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길게 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시간 노동자의 다수가 저임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고용창출의 걸림돌이라고 비난하거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접근방식으로는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이 어렵다. 장시간 일하지 않더라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급을 인상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특히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임금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은 기본급을 정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기업이 책임질 부분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의 중소영세 사업장 다수가 대기업의 지배력 아래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장시간 노동하는 업종으로 손꼽히는 제조업, 운수업, 서비스업 역시 그러하다.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인상하고, 임금인상과 추가채용을 반영한 납품 및 서비스 단가를 책정하여 대기업들이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던 것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싼 값으로 장시간 부려먹을 수 있었던 측면이 크다. 때문에 대기업들이 중소사업장에 단가인하 압력을 넣으며 부를 쌓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곳간을 열어 개미같이 일해 온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개미도 생활고 걱정 없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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