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만든 사회 시스템 고발
안타까운 죽음… 개인 불행일 뿐인가?

▲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영화 ‘더 테러라이브’는 해피엔딩도 권선징악의 결말도 아니지만 보고나면 후련하다.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데 인생은 왜 안 풀리고 불안하기만 한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답답한 심경인 관객들을 대신해 속 시원하게 욕을 해주는 것 같다. 영화가 요지경 세상의 불합리한 단면을 긴장감 있게 추적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인, 경찰이 테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실망스런 민낯을 드러낸다. 객관적으로 진실을 보도하겠다던 언론은 시청률의 노예였고,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하겠다던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민중의 지팡이라던 경찰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를 통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가 건설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었음을 고발한다. 영화의 전개는 테러에 대응하는 과정을 따라가지만, 거꾸로 사건의 발단인 건설노동자의 죽음이 어떻게 발생했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더 테러라이브가 후련한 이유다. 단지 사회적 약자의 얘기를 소재로 삼았다거나 부조리한 세상에 폭탄을 던져서가 아니다. 테러범을 테러범으로 만든 것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이라고 지적하고 그것을 고발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들이 불쌍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한편, 영화가 제공하는 사회고발의 기회에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것은 반대로 일상에서의 갈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청년실업, 비정규직, 빈곤과 같은 산적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단편적인 결과만 보고, 문제를 야기한 시스템을 살피는 것에 소흘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사회문제를 말하고 경청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바로잡는 출발점은 불합리한 현실을 공동으로 직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13년간 일하던 5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몸이 아파 보름간 병가를 쓰다가 더 이상 쓸 휴가가 없다고 생각해 학교를 퇴사했다. 그러나 실업급여 상담과정에서 한 달도 넘는 무급병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학교에 사정했지만 외면당하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저 안타까운 사연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시스템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일하다 아프면 쉬면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비정규직은 병가와 휴직제도가 교육기관 정규직의 1/6에 불과한 수준이라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휴가를 쓰지 못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그리고 비단 휴직제도의 차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동시에 작용한 문제다. 매년 고용계약 갱신으로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도 열악하며 학교별로 채용되어 고용이 불안한 상태다. 학교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차별하고 취약한 지위로 내몬 시스템이 결국 사회적 타살을 야기했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죽음을 개인의 불행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후련한 감동을 영화 속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도 실현하기 위함이자, 개인을 궁지로 몰아가는 시스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함이다.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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