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만든 장미대선. 그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직무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파격적인 모습들을 보여줬다. 어찌 보면 그 파격이 정상적인 모습이지만 지난 9년간 비정상의 일상에 피로했던 시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그 중 내게 인상적인 것은 죽음을 마주하는 대통령의 태도였다.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기간제 교사 두 분의 순직 인정을 검토하라 지시한 것.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산화해간 열사들의 이름을 호명한 것.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도사가 그것이다.



직장 문턱에서 멈춰선 민주주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주목하는 것은 광주항쟁의 오월이기도 하거니와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그날 나는 또 다른 죽음을 추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10일 남해에서 양우권 노동열사 2주기 추모제를 지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기업 EG테크의 노동자였던 그는 2년전 원·하청 사용자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자결했다. 그는 두 번의 부당해고를 당하면서도 5년 동안 홀로 남아 노조를 지켰다. EG테크는 박근혜 동생인 박지만이 소유한 기업이었다. 민주주의 없이 자본의 독재만 존재하는 일터에서 시름시름 앓던 양우권은 “정규직화 투쟁에서 승리하고 후세에 노동자 세상을 물려주자”는 바람을 유서로 남겼다.

 그 바람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8월 함께 활동했던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포스코를 상대로 한 광주고등법원에서 정규직화 승소 판결을 받았다. 올해는 꿈적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박근혜가 탄핵되고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2주기 추모제를 맞았다. 추모제를 마치고 남해 바다를 바라보니 열사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이 온 것 아닌가?’ 허허 웃으며 ‘막걸리 한잔 하자’는 것만 같았다.

 양우권의 꿈이 어찌 그만의 꿈이겠는가? 노조 탄압으로 해고되거나 죽는 일이 없는 일터,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은 2000만 노동자 모두의 꿈이다. 그 꿈이 빨리 현실이 되도록 문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기를 바란다. 그 길은 문대통령 말씀대로 “참여정부를 완전히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 길은 노무현의 유언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보루가 돼야 한다, 그 길은 이미 시민촛불혁명이 만든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광장 민주주의도 일터와 직장의 문턱에 가면 멈춰서고 만다. 노조 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시민의 이름으로 촛불광장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들은 직장으로 돌아가면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 현실이 지난 27일 마사회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며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박경근씨의 죽음을 낳은 것이다. 광장에선 당당한 주권자지만 일터에선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를 날마다, 매시간 경험한다. 자존감에 상처 입은 이들은 우울증을 앓지 않을 수 없다. 노조를 준비하기 위해 만나는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한국사회에서 노조 없는 직장에서 자본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현장을 만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00만 노동자 시대에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노동법이 기업별노조 체계라 단체협약 적용률도 기업 밖으로 확장될 수 없다. 노동자 90%는 노조 없는 일터에서 자본의 권력에 시름할 수밖에 없다. 그 절대다수는 비정규직, 여성,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다.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노동자가 ‘깨어있는 시민’의 일원이 되는 길은 자명하다.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으로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생존권을 보장하고 노조 하는 것, 파업하는 것이 노동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방식의 문제는 남아 있으나)고 약속했다. 검찰은 정부가 바뀌자 공소시효 3일을 남겨놓고 유성기업 노조 탄압으로 유성기업 사용자뿐만 아니라 원청인 현대자동자 사용자 일부까지 기소했다.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칭찬받을 일이다. 자유로운 노조 할 권리에 대한 기대감도 갖게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직 대한민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 8개 중 4개나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조를 결성할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협약, 강제노동 금지 협약 등이 그것이다. 정부, 사용자, 노조 대표로 구성된 ILO의 기본협약 비준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헌법이 노동3권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법률로 노조 활동을 제안하고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현재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제한하고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삶이 바꾸는 혁명이 진짜 혁명이다.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지름길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노조 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일터의 주권자로서 주체적으로 권리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조 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겠다면 비준하지 않은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비정규직이나 중소사업장 노동자도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참여정부를 넘어 민주정부 3기가 성공하는 길이다. 장미 대선으로 출범한 문제인 정부가 노동자에게 빨간 장미를 건네 노동자와 함께 가길 바란다. 빨간 장미는 노동기본권-생존권과 노조 할 권리를 상징한다.

권오산<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책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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