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자, 폭염에 지친 도시의 거리에서 초록나무들이 공존하고 있는 건물이 반겼다.

 오스트리아 빈의 헤츠가세역 근처에 있는 바서하우스를 물어 물어서 찾아 왔다.

 뢰벤가에 자리한 아파트는 1985년 시 디자인 공모전에 뽑혀 개조된 낡은 시영 아파트다. 반듯하고 젠틀한 정장차림의 도시의 풍경 속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자유스러움과 여유의 풍모에 막혔던 숨이 일시에 터진 느낌이랄까.

 마치 동화 속에서 뛰쳐나온 듯, 건물은 강렬한 색채를 바르고, 삐뚤빼뚤한 창문, 울퉁불퉁한 바닥, 인간과 함께 사는 ‘나무세입자(?)와 더불어 아파트는 직선 없이 자연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둥근 탑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엔 회화나무가 층층이 베란다를 차지하고 서서, 뜨겁게 도시를 달구고 있는 햇빛의 융단폭격을 가려주고 있었다.

“파라다이스 만드는 간단한 방법”

 건물 내부에 있는 작은 숲가에서 듣는 분수대의 물소리도 여행에 지친 길손의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준다. 참 편하다.

 살기가 편해서인지 한 번 입주하면 나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온 길손들에 치여 괴롭기도 할 텐데, 묵묵히 감내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훈데르트바서의 말을 새기면서, 문득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김동균 촌장님을 떠올렸다.

 무릎이 아픈 마을 어르신들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펭귄마을. 마을을 지키고자 스스로 나서 활동하시고 계신 것을 ‘더불어 나누는 내집앞 가꾸기 달인’으로 선정하였다.

 골목길을 화재로 폐허가 된 집터에 쓰레기가 쌓이고, 마을이 흉물스럽게 변하자 김동균 촌장님이 먼저 나서고 주민들이 더불어 나섰다.

 불난 집에 텃밭과 작은 쉼터를 꾸미고, 골목담장을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소소한 삶의 추억꺼리들이 허물없이 그곳을 차지하며 전국의 여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호사다마였을까. 이런 당당하고 빛나는 자치활동들이 되레 욕을 먹게 됐다고 한다.

 나라에서 이끄는 도심재생사업과 맞물려 마을 사람들의 눈높이와 속도를 맞춰가며 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수조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진행하면서 온갖 논란이 발생할 터인데 펭귄마을에서부터 제대로 소통해가면서 더불어 행복한 도시를 꿈꿔 가면 좋겠다.

 민주와 평화의 도시 광주다운 긴 안목과 큰 품으로 안고 갈 수 있는 것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철학을 가지고, 골목과 마을과 지역의 미래를 그려 나갈 수만 있다면 면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지역의 많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혜안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나무 세입자권과 창문권

 옆에 있는 바서타운과 뮤지엄을 들러 창문권(Window Right)과 나무 세입자권(Tree tenant Right)을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에 구현했던 건축가이며 화가, 환경운동가의 진면목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팔이 닿는 만큼 창문과 외벽을 개조해 ‘저곳에는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은 창문권(Window Right)과 식물이 자랄 땅을 빼앗아 집을 지었으니 옥상과 집안에 나무들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나무 세입자권(Tree tenant Right)은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하는 개념이었다. 그의 푸근하고 인간미가 풍기는 철학이 이 건물들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혼자 꿈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는 마을 하였던 평화주의자 1928년생인 훈데르트 바서는 2000년에 지구별을 떠났다.

 ‘평화의 제국에 흐르는 100개의 강’이라는 뜻의 이름, 훈데르트바서를 문화중심도시 광주, 민주와 평화의 도시 광주에 불러서 ‘평화와 상생의 길’을 묻고 싶었다.
김경일<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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