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시간 임박하여 송정역에 도착하였다. 역 주차장은 만 차! 서둘러 맞은 편 골목길로 차를 돌렸다. 없는 공간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 꾸역꾸역 차를 들이밀었다. 시간을 보니 전력질주하면 간신히 열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나의 거친 숨소리가 귀가에 몰아쳤고, 가슴은 요동쳤다. 좌석에 몸을 눕히는 그 순간 헛구역질이 넘어왔다. 미칠 것같이 뛰던 심장은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가방에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펼쳐들었다. 전남도청에 켜켜히 쌓인 시신들에 대한 묘사와 시신 확인을 도와주는 이들, 도청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 대한 묘사가 눈에 들어왔다. 숨 막힐 것 같은 죽음과 공포, 막막함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도저히 더 읽어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책을 예전에 쉽게 읽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그냥 기차 놓칠까봐 전력질주 한 뒤에 오는 가벼운 신체고통에도 이리 다가오는 의미가 다를 진데.

“지방선거 앞두고 탈맥락적 사고”

 예전 전남대학교 박구용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고흐의 작품을 제대로 보려거든 병에 걸렸을 때 보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그 땐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가파 오르는 숨을 참으며 ‘소년이 온다’를 읽는 그 순간 내가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내가 준비되기를 기다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작품이 말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라는 말은 자신의 목적과 목적합리성을 기준으로 세상에 다양한 존재들에 담긴 맥락을 무시하고, 진위, 선악, 미추의 이분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는 시대의 흐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3km를 가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라.(아프리카 속담)’ 한 사람의 삶에 다양한 맥락이 담겨 있기에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평가할 때 잘못된 평가를 하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강조한 말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마이크 타이슨)’ 현실의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의 계획들에 대한 비판이다.

 곧 2018년이다. 지방선거가 있고, 교육감 선거가 있다. 꿈을 품은 장삼이사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위의 탈맥락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말들은 바로 그런 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인기를 얻기 위해선 자신이외의 기존의 모든 것을 전면 부정하며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탈맥락적 행동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탈맥락적 행동(이분법적 사고와 주장)은 세상에 다양한 함의와 맥락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폭력을 내포하고 있기에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슨의 말은 그런 현실의 많은 맥락들을 무시한 주장들에 한 방을 날리는 말이었던 것이며 소위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에 지친 대중들에게 청량감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맥락을 고려하는 길은 무엇인가?

 물론 맥락적 사고의 폭력성 또한 영화 ‘이끼’처럼 폐쇄된 공동체의 규범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등 위험할 수 있다. 탈맥락적 사고를 지나치게 경계하여 맥락적 사고에만 매몰될 경우, 잘못된 공동체의 관행과 관습에 의해 인간의 기본권들이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폭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정감사에서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부정과 부패에 대하여 관료들이 ‘관행이었다’고 하는 변명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맥락의 전면부정’, ‘맥락의 전면긍정’을 경계해야한다. 자신의 권력획득을 위해 전면부정, 전면긍정 하는 이들은 전체주의적 폭력을 실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맥락의 전면긍정과 전면부정을 피하며 맥락을 고려하는 길은 무엇일까? 2018년을 앞 둔 시점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김동혁<전교조 광주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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