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 멈추고 잠시 쉼도 족하지 않은가

▲ 하던 일을 멈추게 하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
 7말8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많은 직장들이 휴가를 시작한다. 올 해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 정체와 휴가지 인파, 그리고 폭염과 물놀이로 인한 안전사고가 매일 보도된다. 하지만 나는 7말8초 풍경 밖에 있다. 휴가를 함께 갈 사람이 없고, 여기저기 인파가 몰렸다고 하니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며, 반백수라 지갑 단속 중이던 차에 더울 땐 집이 최고라는 생각까지 보태고 보니 굳이 어디로 나가지 않아도 그만이다. 마치 여우가 `저것은 신포도’라며 자신이 포도를 따지 않은 이유를 합리화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니 자식들이 20대가 넘어서면 특별히 휴가를 따로 챙기며 보내는 눈치가 아니다. 20대 자녀들은 군대나 대학에 다닐거고 가족이나 부모보다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자녀와 함께 휴가를 보내곤 했던 나는 휴가가 다가와도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어쩌면 휴가를 기다렸던 것은 20-30대, `한 때’였던 것도 같다. 애들 때문에 물놀이라도 눈썰매라도 유적지라도 다녀왔던 것 같은데. 이제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성장하다 보니 뭔가 다른 휴가보내기를 고민해야 한다.

 학업이나 근무를 `일정기간 동안 쉬는 일’이 휴가의 사전적 정의다.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은 없다. 그냥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편안한 상태가 되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된다. 그러니 굳이 어디를 누구와 갈지 등 계획을 세우고, 이것저것 짜서 맞추는 스트레스를 경험할 필요는 없다. 에어컨 밑에서 이런 저런 음식을 시켜먹고 뒹굴며 논다고 그것이 휴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름철 계곡 베스트’, `알려지지 않는 국내 명소’ `해외 부럽지 않는 국내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돌아와선 내 집이 최고란다. 그러니 내 집이 최고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집 밖으로 나서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오랜 동안 여름휴가에는 바다로, 계곡으로, 유적지로 떠났던 몸에 배인 습관 때문인가. 혹은 주변사람들이 이리 저리 여행을 떠난 빈자리가 느끼며 그들처럼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났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고 무언가 해야 될 것 같아서 인가. 대체 안가도 그만이라는 마음과 그래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휴가와 여행은 단짝이다. 하던 일을 멈추게 하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일상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멀어지다 보면 생활상의 스트레스와 현안 문제를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게 하고, 잠시나마 새로운 음식, 경치, 사람, 경험을 통해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한다. 좋든 나쁘든 자신의 돈을 주고 한 경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의미나 보람을 찾으려 하기에 설령 바가지요금과 사람구경만 실컷 했다는 푸념뿐인 여행일지라도 우리를 다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에너지를 준다. 그러니 `와이키키 부럽지 않은’ 여행지를 검색하는지도 모르겠다.

 칠말팔초라는 대국민 휴가도 다 지나가는 요즘, 늘 함께했던 사람들이 곁에 없어서 혼밥처럼 `혼여’를 할지 말지에서 시작된 휴가고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만 여겼는데, 집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하며 보내고 있다. 이렇게 방콕만 하다 출근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은근 후회할 것도 같지만, 편안하게 쉬는 곳으로 집 만한 데가 따로 없다. 또한 `하던 일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에서는 이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 글쓰기를 마치며 생각해낸 타협안은 `근교 놀기 좋은’계곡이나 바닷가를 검색하고 `주말에 가보면 어떨까’한다. 굳이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한 `혼자’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에어컨 밑을 사수하기에는 너무나 더운 여름이니.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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