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업무에 적응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생겨난 직업병(?)을 호소하는 글을 봤다.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들끼리 모임을 한 후 서로가 모임을 ‘마치는’ 멘트를 하려는 종례병이 있고 카페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문을 안 닫고 가거나 지저분한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 소리’하고 싶은 잔소리병도 있단다. 기자는 마감시간이 닥쳐올 때까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마감병’이 있고, 요리사는 사람들은 숫자를 세고 돈을 계산하는 계산병 등이 있단다. 오랫동안 직무에 충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버릇 같은 것이란다.

 20여 년을 경찰관으로 근무한 친구는 자신의 업무로 인해 생긴 습관 아닌 습관이 제로 수준으로 저하된 ‘공감능력’을 꼽았다. ‘강력한’ 사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단다. 파출소에 근무했을 때는 술에 취한 사람이 도로변에 앉아 있다고 신고가 들어와 출동 나갔다가 욕설과 폭행을 당하고, 자살이나 살인으로 죽은 사람을 빈번하게 볼 뿐만 아니라 훼손이 심하거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변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데 저절로 생각이 났었다고. 또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었다고. 업무 시간 내내 아무도 원치 않는 부정적인 감정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힘들었고, 점차 온정적인 감정보다는 냉정하고 개관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게다가 점점 그들이 하는 말이 변명처럼 들리고 사실을 왜곡한다고 느껴져 듣기 싫어졌다고.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 친구는 정 많고 눈물 많은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의 업무 자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고, ‘하도 많이 보니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느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힘들어 진다고 했다. 죽은 사람을 볼 때마다 놀라고, 주취자가 욕할 때마다 모욕감을 느끼고, 범법자의 도발을 경험할 때마다 분노한다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느끼지 않는 것’과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떤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피하고, 부정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일상에서 누군가 어렵게 꺼낸 ‘힘들다’는 말을 묵살하고 속으로 ‘엄살이 심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단다. 예를 들면 가정 폭력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왜 그런 남자를 만나 살고 있나’ 헤어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단다. 그러다 보니 간혹 언론에서 지적하는 경찰의 ‘허술한 대응’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워낙 강력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무뎌지고 냉소적으로 변하고, ‘웬만한 것’들은 주의를 두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은 일상에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세상이 재미 없어 졌고, 좋아 하는 것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예전에는 즐거웠던 것들이 이제는 ‘말 같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느낌에 앞서서 들고, ‘저것은 다 거짓말’일 뿐이다고 느껴져 이제는 TV나 영화 관람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나 가족들과 모임을 할 때도 누군가에게 관심이 갖거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는데 맞장구를 치거나 눈치를 살피는 것이 귀찮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느껴져서란다. 그러다 보니 자꾸 모임이나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것 같고, 혼자가 편하다는 느낌으로 자꾸 고립되는 것 같다고 한다.

 업무상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걱정과 불안, 위협, 긴장감 등과 같은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일이 끝난 후 퇴근하면서 두고 올 수 없다. 그러나 불안이나 걱정, 위협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없애거나 안 느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면. 신경 쓰지 않고 방심하면 금방 살이 찌는 ‘몸’처럼 감정도 그러한 시선으로 보라. 적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몸을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경우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도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몸을 돌보듯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라면. 그러나 상대를 공감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겠나. 자신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거나 ‘나는 더한데 그 정도는’ ‘아직은’ 이라고 말하는 꼰대가 되기 싶지 않을까….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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