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손학규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새 지도부가 대거 참배에 나섰다. ‘제1야당’ 지도부의 등장에 이형주 민주묘지관리소장이 직접 안내를 맡았다.

 문제는 헌화 이후 이어진 묘지 안내에서였다. 이 소장이 안내한 분묘 3기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윤한봉 선생과 신영일 열사였다.

 그런데 윤한봉 선생 묘 앞에서 이 소장은 “(5·18)당시 대변인이었다”고 소개했다. 진짜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혼동한 것. 이때까진 ‘실수’라 여겼다. 하지만 신영일 열사 묘지 앞에서 ‘무지’였음이 드러났다. 묘비를 자세히 살피던 천정배 의원이 “이분도 그때(5·18) 부상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거냐”고 묻자 역시 “그렇다”고 답한 것. 신 열사는 오월항쟁 이듬해 전남대 시위 관련 수감, 박관현 열사와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출소 후 뜨겁게 민주화운동을 하다 1988년 과로로 숨졌다. 관리소 스스로가 현재 ‘이달의 유공자’로 지정 발표한 인물이기도 하다.

 행사가 끝난 뒤 이 소장에게 윤한봉 선생의 묘지 안내 이유를 다시 물었다. 역시 “당시 대변인이라서”라고 답했다. 이에 “당시 대변인은 윤상원 열사였다”고 고쳐주자, 이번엔 “손학규 대표와 같이 감방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고 말을 돌렸다. “그게 언제냐”고 묻자, 부소장에게 넘겼다. 부소장은 “손 대표가 과거 이곳에 왔을 때 윤 선생과의 감옥 인연을 말한 적이 있다”며 “아마 5·18 때나, 80년대 전후일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윤 선생은 80년 수배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13년 만에 돌아온, ‘5·18마지막 수배자’로 잘 알려진 인물. 물론 두 사람이 70년대 민청학련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른 건 사실이나, 윤 선생의 이력을 안다면 나올 수 없는 답이었다.

 ‘오월’의 고갱이 같은 민주묘지를 누구에게 내맡기고 있는 걸까. 일곱 차례나 무산된 관리소장 개방형공모 실패와 무관치 않아보였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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