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오늘 빼면 딱 하루 남았다. 되돌아보니 내게도 작은 변화가 하나 있었다, 주말 산행이다. 무슨 계획을 세워 실천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두 번 다니다 보니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지금은 1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혹자는 “곧바로 내려올 짓을 왜 하느냐”고 비아냥대지만 이는 등산의 매력을 모르는 소리다.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이 등산이다. 오르면서 힘든 만큼 정상에서 느끼는 쾌감도 덩달아 커지는 게 등산의 매력이다. 어떤 사람과 동행해도 좋고, 혼자 걸으며 사색에 빠져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주로 오르는 산은 무등산이다. 광주사람이면 다 같을 것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광주에 살면서도 무등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증심사~중머리재 코스를 몇 번 올랐을 뿐이다. 토끼등, 바람재, 꼬막재, 너덜겅, 규봉암 같은 무등산의 대표적 지명들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 박선홍 선생은 “산세가 유순하고 어느 곳에서 보나 둥그스런 모습이 한결같아 믿음직스럽고 후덕한 느낌을 준다”고 무등산을 소개한다. “좋은 산세가 좋은 고을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해발 1187m의 큰 산에 기대어 자리잡은 광주사람들이야말로 좋은 산세를 타고 난 선민(選民)”이라는 게 그가 규정한 광주사람과 무등산의 관계이다.

 광주사람들의 사랑이 넘치는 만큼 무등산에는 숱하게 많은 등산로가 있다. 공식 탐방로만 해도 15개에 이르고, 최근엔 ‘옛길’ 3개 구간이 새로 조성됐다. 여기에 각 탐방로를 연결해주는 샛길들이 거미줄처럼 나 있어 주말 무등산은 말 그대로 거대한 도심공원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옛길’을 좋아한다.

 옛길은 3개 구간으로 조성됐는데, 산행의 참맛을 느끼기엔 그만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소를 내다 팔기 위해, 어머니들이 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덕택에 원시림의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좋다. 반면, 기존 등산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산행의 호젓함을 느낄 수가 없다.

 숲 속 정취에 흠뻑 빠지는 것도 좋치만, 산에서는 길을 조심해야 한다. ‘방기곡경(房岐曲逕, 샛길과 굽은길)’이 유난히 많은 곳이 산중이기 때문. 한 번 잘못 들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지난 봄 법정 스님이 기거했다는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갔다가 고생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머금고 있던 어느 날이었는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온 산을 헤맸던 기억이다. 고생 끝에 찾은 불일암에서 ‘무소유’의 향기를 느꼈던 그 날의 감흥이 오래도록 남는다.

 무등산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늦가을 어느 날. 옛길 중 가장 늦게 개방한 3구간을 타기로 마음 먹고 장원삼거리를 출발했다.

 3구간은 이 곳에서 출발해 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환벽당(가사문화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지난 8월 한 차례 완주한 바 있는데, 한 여름 뙈약볕에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이 번엔 땀 좀 덜 흘리고 올라 볼 심산으로 산행에 나섰다. 한데 웬걸, 한참을 가다 보니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다. 장원봉 어디에선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인적이 뜸해지더니 이내 길 자체가 없어졌다. 봄날 송광사 뒷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몇 시간을 산 속에서 헤매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4수원지와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오전 시간이고 날씨도 화창해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자칫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산에는 이처럼 갈래길이 많다. 선택의 순간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표지판이 있긴 하지만 잠깐 한눈을 팔거나 하면 엉뚱한 길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선택을 강요하는 갈래길은 누구에게나,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바뀌게 됨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중략)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 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로버트 푸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또한 선택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틀 뒤면 맞게 될 2011년 새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을 것인가? 그 때마다 우리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오일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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