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안에 누군가 앉아 있다./ 시월의 문턱을 막 넘어선, 환한 절정// 가스라진 귀밑머리 어깨위에 몰아쉬던 한숨들 덕지덕지 많다. 힘들었겠다. 가지마다 피우고 지우고 지운 자리에 또 꽃피웠으니 떨어져 누운 꽃잎들 모두 전생이었을 터, 여러 생이 한몸이었구나. 바싹 말라 비틀어진 자리가 경계다. 한 번도 저쪽으로 넘어가거나 이쪽으로 훌쩍 건너뛰어 보지 못한// 그 길 반들반들 닳았겠구나/ 한 시야(視野)가 급하게 트이는 걸 보면.>

 -신덕룡, ‘백일홍’ 전문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그 비 그치고 나면 목백일홍이 피겠다. 그 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난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또 피는 백일홍의 꽃 피우는 일 속에는 무수한 반복이 있다. 그 일 사람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백일홍이 ‘피우고 지우고 지운 자리에 꽃피우듯’ 사람도 제 몸에 무수한 꽃들을 매달고 있다. 그렇게 ‘여러 생이 한 몸’이고, 나는 오로지 내 것만이 아니다. 피와 살을 나눠가진 몸의 대물림은 백일홍의 시간이며 사람의 역사다. 그래서일 것이다. 서로의 경계를 한 번도 넘어가 밟지 못하지만 내면으로 통하는 걸음이 있으니 길이 반들반들 닳았던 것이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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