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한해가 끝날 때마다 회자되는 말이지만 올해만큼 공감한 해가 있었나 싶다. 파란만장한 1년이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명명된 국정농단 사태, 전무후무한 권력의 사유화에 농락당한 국민은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대통령 퇴진” 촛불을 들었다. 국민들 몸과 맘이 피폐해진 1년, 지도자를 잘못 뽑은 공화국 백성들이 감내해야할 수고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체감한 한 해였다.

 군주민수(君舟民水). 교수신문이 올해를 결산하며 선택한 사자성어도 맥을 같이 한다.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니, 강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 이 역시 2016년 맞춤형 성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말 그대로 ‘물’로 보고 있음이 누설된 게 7월이었다. “민중은 개돼지로 여기면 된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가 현실의 언어가 된 날.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이같은 발설은 대한민국 특권층 의식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과연 ‘최순실 게이트’를 범죄로 여길까? 의문이 들 정도. “이러려고 대통령했나 자괴감 들어”라는 대통령의 담화가 이같은 심정의 발로로 읽힌다.



‘개·돼지’에서 배 뒤집은 강물로

 그래도 민중이 맹탕 ‘물’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이 다행스러웠던 해였다. 민심 이반 지도자를 내몰고, 정치를 바로 세운 해였다.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역량의 확인, 올 하반기 민중은 파도가 되고 (촛)불이 돼 세상을 사르고 뒤집었다. “정치는 삼류지만, 국민은 일류”라던 김제동의 어록이 민중의 광장에서 더욱 빛났다. 지금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고, 최순실 등 국정 농단 세력들은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다. 2016년 민중은 한 페이지 승리의 역사를 썼다. 계속 승리할 수 있을까?

 2017년의 선택이 중요하다. 혁명은 폭군을 몰아내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음에, 민의에 합당한 지도자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마땅하다.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이같은 혁명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완성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늘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진 않는다’는 게 역대 선거의 교훈인 바, 2016년 광장의 민심을 수렴한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건 이런 점에서 우려스런 징조다. 트럼프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내뱉은 언행 하나하나는 지도자로선 수준이하였다.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묘사하며, 그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미국내 무슬림 입국 금지 등 극단적 혐오를 숨기지 않았고, (방위비 분담을 높이지 않으면)‘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사실 관계에 어긋나는 발언도 거침없었다. 세계는 ‘정신병자’라고 경계했지만, 다수 미국인들은 그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값싼 중국산에 점령당한 시장에서 위기에 몰린 국민들, 특히 중년·백인·남성을 겨냥해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부추긴 전략이 먹힌 것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비판했던 게 이런 연유일지 모르겠다. 대중적 요구에 집중하고 무조건 부응하려는 정치, 합리적 계산이 결여된 그 선택에 따른 뒷감당은 결국 국민의 몫이었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박근혜류’·‘트럼프류’ 극복해야

 촛불혁명을 이끈 민중이 2017년 대선에서 마주할 후보 중에도 이같은 부류가 있을 수 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특정인을 위해 행사한 박근혜 아류, 대중적 요구에 부응해 자극적이고 극단적 주장을 펼친 트럼프 아류들 말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학자가 통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상의 보잘 것 없는 명성을 멸시하는 걸 고귀한 것으로 존중하고, 정의를 가장 위대하고 필수불가결하게 생각할만한 덕은 철학자에게만 있다”고 본 것이다. 사익 추구에 몰두해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류’를 극복할 기준으로 삼을만 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한 지도자상도 있다. 군주의 덕목으로 요구한 건 여우와 같은 간사한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이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지만, 이는 목적의 방향성을 간과한 오해의 산물이다. ‘낡고 전통적인 도덕이나 종교를 타파해 새로운 정치·사회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배자가 필요하다’는 게 주장의 본질인데, 이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살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에서 옛 로마제국의 번영을 주도한 시민적 역량의 소생을 갈망한 것이다. 이 정도 기준이라야 대중추수적인 ‘트럼프 류’의 지도자를 극복할 수 있을 테다.

 다시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임을 되새긴다. 이 강물 위로 새로운 배가 뜰 채비로 분주하다. 어떤 배일까? 순항할까? 전복될까? 2016년 배를 뒤집은 그 강물이 2017년으로 흘러간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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