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8월 광주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시청 앞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이 소녀상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인권을 회복하고 이후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일이 없도록 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금과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이렇듯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주먹을 쥐고 다부지게 앉아 있는 소녀상을 시작으로 전국에 소녀상이 하나 둘씩 세워지고 있고, 지난 12·28 굴욕적이고 기만적인 한·일 합의가 있은 후에는 더 활발하게 곳곳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자발적인 모임과 모금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바르게 세워가는 일, 당연한 일이고 필요하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작고 연약한 ‘소녀’라는 동일한 상징물로만 일관되게 기억될 필요가 있을까?



‘소녀’라는 동일한 이미지로 일관

 평화의 소녀상의 이미지가 ‘위안부’ 피해자를 10대 소녀로 한정하고 소위 ‘단아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쉽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지난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두려움을 모르는 소녀(Fearless Girl)’라는 이름의 동상이 하나 설치되었다. 이 소녀상은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돌진하는 황소’ 앞에서 마치 황소 상에 대적하는 자세로 양손을 허리에 얹고 도전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소녀상은 남성지배적 환경을 타파하고 성(性)의 다양성을 진작시키자는 취지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 소녀상은 누가 보더라도 당당해 보인다. 소녀상을 보고 있으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상징성에 공감하게 된다.

 곽예남 할머니는 현재 광주·전남지역 유일한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다. 16세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해방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랫동안 중국에서 혼자 살다 10여년 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 의해 다시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다. 현재 암투병중이며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고 역사다. 그 역사는 고스란히 16세 소녀 때에도 94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전국에 생존해 있는 40명의 할머니들은 지금도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는 이런 역사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 소녀가 아니라 할머니로 말이다. 그래서 지금쯤이면 ‘싸우는 할머니’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일본군 ‘성노예’제는 전시 성폭력이었고 성폭력은 전쟁에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발뒤꿈치를 들고 있다고 했다.



상징물 다양한 성, 저항 모습 담아야

 최근 광주시 일부 자치구에서는 또 다른 ‘소녀상’ 건립을 위한 자발적인 시민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전국의 고등학교에 1000개의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고등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 소식과 함께 얼마 전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성희롱하고 추행한 장면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얼굴과 함께 SNS에 올리는 남자와 뉴욕의 두려움을 모르는 소녀를 상대로 성적행위를 한 남자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극히 일부의 사람이 저지른 일이었다지만 우리 사회가 ‘소녀상’을 그렇게 보는 건 아닌지 화가 나고 불편했다. 박제화된 소녀상을 세우는 일보다는 우리가 ‘소녀상’을 통해 기억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또 상징물이 필요하다면 이는 다양한 성, 저항하는 여러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길 바란다.

백희정<광주나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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