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5살이며 1993년생인 나를 포함하여 위아래 각 5년을 아우르는 우리들은, 남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20대다. 그러나 그런 환상에 부응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지 몇 해 뒤 1997년 IMF 금융위기가 터졌다.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자라왔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오아시스를 쫓아가다보면 허상 속에서 죽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허상을 쫓는 일은 멈추고 그 자리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맞이하는 선택을 한다. 뭔가를 포기하는 선택은 슬프다기보다는 차라리 찬란하다.

 요즘 이런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You Only Live Once. 현대인들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에 오히려 외면을 택했다. 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팽팽하게 유지되다가 한계점 이상에서 끊어지는 것처럼 경제적, 사회적, 이념적 양분이 심해지고 국제적인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마치 구름위에 사는 사람처럼 여유 있는 삶을 외친다. 한 번 뿐인 인생 즐기자고 말한다. 과거와 미래를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떨어지고, 다시 지옥같은 1년을…

 그런데, 포기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취업 준비생이 그렇다. 나는 격렬한 취업경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주변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방에 또는 도서관에 식물처럼 뿌리를 박고 오로지 취업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라도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게 어렵다. 연락은 뜸해지고 몇 개월에 한 번, 생일에 잠깐 연락을 주고받는다. 가난한 지방대 대학원생의 생활이 얼마나 더 나을까 싶은데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들보다는 덜 고독한 것이 분명하다.

 상반기 공채가 한참이던 때 한 친구가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의미 없는 가벼운 대화가 오갔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였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그 친구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다가 전화 연결이 안 좋은 것 같아서 다시 전화 한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천둥처럼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서럽게 울면서 그 친구는 “내가 부족한 것 아는데, 한 번에 취업하려는 거 욕심인 것 아는데….” 그런 소리를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한 참 눈물을 쏟고 이야기해보니 지난 1년간 준비해왔던 기업의 공채에 최종면접까지 갔는데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해왔는지 알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친구들도 다 열심히 하지만 이 친구는 우리가 말하는 스펙이 좋은 친구였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떨어진 것도 너무 슬픈데 그보다 더 슬픈 건 지옥 같은 1년을 앞으로 몇 년 더 보내야 할지 너무 깜깜하다고….

 기성세대의 언어로, 옛날에 비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받은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람구실을 할 때까지 눈칫밥을 먹는다. 제 구실을 하는 어른도, 보호받을 수 있는 아이도 아닌 표류하는 유기체. 우리는 사회적 시선이나 가족의 기대 뿐 아니라 거울 속의 나에게도 눈치를 본다. 자신이 현재 힘든 것은 과거의 자신 때문이고 스스로의 미래를 만드는 것도 현재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스스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각은 점점 책상 안에 갇히고 세상을 원망할 생각은 시도하지도 못한다.



꿈은 포기하고, 취업에만 매달려도

 이들이 취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자살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하는 행위로 규정된다. 반면 꿈은 가장 먼저 포기해야하는 것이다. 꿈을 좇는다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사치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자신을 한 없이 부끄러워한다. 아니, 애초에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친구들이 태반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 10명 중에 약 5명은 공무원 준비를 하는 시대. 그렇지만 자신이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것에 떳떳하지 못한 청춘들. 도대체 왜 나와 내 친구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속되는 포기의 경험은 우리를 무기력한 사회적 약자로 만든다. 너희는 좋은 시대에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서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냐는 말, 왜 목표의식이 없냐는 말, 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하지 않느냐는 말은 어쩌면 폭력에 가깝다.

김서희<전남대학교 공과대학 환경에너지공학과 일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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