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때부턴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고(故) 박완서 작가가 막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난 뒤에 통한의 심정으로 쓴 글이 담겨 있다. 아들을 잃은 작가의 심정이 너무 절절하게 와 닿아 가슴이 아팠다.

 그 책의 여운이 깊게 가슴에 남았었는지,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난 박완서 님이 떠올랐다. 만일 그 분이 세월호 사건 때 살아있었다면 피눈물을 흘리면서 팽목항으로 달려갔을 것이고 세월호 엄마들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의 대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갑작스럽게 자식을 잃는 경우는 이별 중에서도 최악이다. 너무 처참하다. 엄마들의 무의식에는 청천벽력같은 이런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자녀가 갑자기 사라질까 불안해하고 쩔쩔 맨다.
 
▲“아들이 애인역할까지 하고 있었네…”
 
 얼마 전에 심리극을 했다. 주인공은 50대 초반의 돌싱 아줌마였다. 주제는 같이 사는 아들과의 관계였다. 20대 중반의 잘난 아들이 여자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 처음에는 내 아들이 다 커서 연애도 하네 하고 기특했지만 조금 지나니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외롭고 심지어 아들 여친에게 질투까지 생겼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해보니 엄마와 아들 관계는 역시나 애정이 넘치는 밀착 관계였다. 드라마가 끝나고 주인공이 “내 아들이 그냥 아들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애인 역할까지 했었네” 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아들로만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남자가 되어있었고 그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것이다. 엄마의 그 허전한 느낌은 ‘실연’의 감정이다. 어이없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엄마는 잠재의식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아픈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별은 늘 아프다….

 그래서 요새는 죽어라 이별을 안 하고 못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자녀 하나 둘 낳고 대학 입시 때문에 20년을 매니저 하다보니 그 관계가 너무 깊어졌다. 그러니 헤어져야 할 때를 모른다.

 신입사원 엄마한테서 잘 봐달라고 화분을 보내는 엄마, 딸 연봉을 엄마가 대신와서 해주는 엄마. 대학 들어간 딸 아이 남친에 대해 시시콜콜 물어보는 엄마, 아들 코디해주는 엄마.

 아이들이 커도 엄마가 아이와 이별을 못한다. 붙어산다.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다 연결되니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다. 이게 심하면 병이 된다. 정신과적 용어에 ‘pathologic bonding’ 이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 사이가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병적이라는 뜻이다. 병적 관계이고 나아가 병적 집착이고 병적 속박이 된다.

 아들 아들 하는 엄마.

 아들하고 엄마하고 너무 가까우면 안 좋고 딸하고 아빠하고 너무 가까워도 안 좋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특히 성인이 되면.
 왜 안좋냐. 가까운 만큼 상처가 크고 가까운 만큼 집착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를 때만 눈 뜨고, 입 열고…”
 
 이별은 언제부터 해야 하나. 내 생각에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중2가 무서워 못쳐들어 온다’는 우스개 소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들이 독립적이 된다는 뜻이다.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의 독특한 색을 띄기 시작한다. 이때가 엄마가 아이와 이별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내가 필요해. 아직 안돼. 이렇게 미련이 남을 때가 타이밍이다. 모든 이별은 미련이 남고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 완전 쿨하게 털어서 미련 하나 없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망가진 뒤이다.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한쪽 눈 감고 혀를 깨물고 나중에는 아이가 부르기 전까지는 두 눈을 담 감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부를 때만 눈뜨고 입여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엄마가 덜 아프다.

 하늘이 주는 이별은 운명이다. 그런 이별은 세상이 끝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세상살이 이별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미련이 남고 아쉬움이 남을 때…어느 때가 적당할까. 이별해야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답인데 아쉬움이 남을 때, 미련이 남을 때. 불안이 생길 때. 그때가 이별할 때이다.

 오늘로서 ‘광주드림’의 ‘엄마는 괴로워’ 칼럼과 이별한다. 아쉬울 때 이별하자. 그래야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다. 광주드림, 그리고 독자들에게 고맙다.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사이코 드라마 수련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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