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연말연시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해를 설계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나 역시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무슨 꿈을 꾸고 실행했는가, 그리고 어떤 아쉬움이 남는가를 되짚어 보았다. 1년 전 이맘 때 고민했었다, ‘문화행정·경영‘이라는 이런 딱딱한 용어 말고 나 자신을 규정하고 이끌 다른 표현은 없을까 하고서. 그 때 결심한 게 있다. 문화예술인과의 소통이 그것이다. 좀 더 가까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함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어떻게…’란 논리적인 질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문제의 요체이고 핵심이다.

 다행히 비교적 빨리 답을 도출하였다. 젊은 시절,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결론은 한 해 동안 어떤 형태로든지 직접 예술행위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예술인들과 소통하며 살아왔지만 경영자와 행정가의 입장이었을 뿐 예술가들과 동지적 관계에서 예술활동을 해 보지 않았다. 1984년으로 기억한다. 그 때 광주에서 노래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한데 모여 ‘예향의 젊은 선율’이라는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었다. 몇몇 선후배들과 창작 작업을 했던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벌써 30여 년 저쪽의 일이다.

“직접 예술행위를 해보자” 결심

 물론 나는 본격적인 예술인은 아니다. 예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한 때 예술과 관련된 꿈을 꿨던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 30여 년을 예술인들과 이래저래 관계를 맺으며 일하는 동안 뭔가 모르게 예술인들과 나 사이에 간극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틈새가 더 커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입장만 내세우고 양보없이 그들과 소통하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들과의 대화가 겉돌았다. 어쩌면 그들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되돌아보니, 지난 세월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았다. 그 아쉬움을 떨치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형태로든 창작 행위를 해보고자 하였다.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김준태시인과 함께 ‘학생독립운동가’를 만든 것이다. 김 시인의 시에 내가 작곡을 붙여 그럴싸(?)한 기념곡을 뽑아냈다. 다행히 주변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는 7개월의 사투 끝에 창작 CCM을 완성하여 발매했다.

 수록곡 11개를 모두 직접 작곡했다. 작업이 힘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 둘까를 몇 번이나 갈등했는지 모른다. 작업에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였다. 주말과 연차휴가를 활용하여 간신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비록 한 장의 창작 CD이지만 여기엔 다양한 작업이 들어갔다. CD작업은 그래서 전문가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독립운동가·창작CCM 산물

 CD작업을 하는 동안 새삼 창작의 고통과 아픔을 진하게 느꼈다. 내가 겪은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으며 작업을 할 것이다. 창작의 고통에다 생활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등 부수적인 어려움이 따르기 십상이다. 그 같은 현상은 내게 익숙한 음악 분야 뿐만 아니라 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동일하게 발생한다고 본다. 그것을 잘 알기에 예술창작, 그게 무엇이라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품어내어 일궈내는지, 문득 예술인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는다. 힘들고 퍽퍽한 현실을 딛고 오롯이 창작의 세계를 개척하고 유영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경의를 표한다.

 ‘딱꼬집기’ 칼럼을 준비하면서 처음엔 나 자신을 꼬집을 생각으로 글을 쓰다가 마음을 바꿨다. 황금 개 띠 해를 맞아, 내가 개띠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속삭이고 싶다. ‘작년에 수고했다. 그런데 올 해는…?’
김종률<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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