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유승민 대표 등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추진위원회가 지난 6일 오전 대전 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해 현장 견학과 연구자 및 창업자와의 간담회,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오마이뉴스 장재완|
 사람들이 믿었던 사람에게 크게 실망할 경우 “머리가 검은 놈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을 쓴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것은 그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해서 가볍게 잊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처음에 알고 있던 사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현격히 다를 때, 그 불일치가 심리적 고뇌를 만들고, 그 고뇌를 끝내기 위해, 불일치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구하게 된다. 도덕적이고 다정한 아버지의 인상을 평생 유지했던 코스비(‘코스비 가족’이라는 드라마의 가장 역)가 수많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뉴스는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심리적 불일치를 크게 경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코스비라는 배우와 드라마가 보여준 허구적 모습에 속았다고 쉽게 남을 탓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안철수의 정치형태는 인상의 불일치를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 그가 ‘V3’라는 컴퓨터 백신을 만들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시장후보를 양보했던 모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가 호남민의 기대를 팽개치고 바른 정당과 합당하거나, 남북평화를 위한 중요한 동계올림픽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일관된 인상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안철수 정치행태,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사람들은 설명의 막막함에서 도달했을 때 작은 이해의 빛이라도 찾으려 한다. 그 시도 중 한 가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정치를 하면서 변했다는 설명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그에 대한 신뢰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는 문제가 없었는데 정치판이 그를 망쳤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려면 무엇보다 그 계기가 중요할 터인데 그 계기를 쉽게 발견하기 어려워서 더 안타깝다.

 두 번째 설명은 그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선하지 않은)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 것은 사업 성공처럼 그가 이룬 외적 업적 때문이거나, ‘무릎 팍 도사’ 등을 통한 이미지 세탁이거나, 진보정치인, 진보작가 등과 같은 인맥을 이용한 후광효과 때문이지, 그의 본질이나 내면은 원래부터 탐욕적이었으며, 그 무엇보다 자신의 성취가 중요했기에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만큼 내면의 도덕성에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검증하기 쉽지도 않고, 전문가라 하더라도 그의 자서전, 연설, 행동 등의 자료에서 그의 비인격적 조짐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의 비일관된 모습에서 그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측면이 있지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있다. 표리부동하고 국민에 대한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을 따르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것이다. 이건 단지 안철수 지지자를 제한해서 지목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국가적으로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사건은 ‘황우석 사태’이다. 2005년 ‘PD수첩’에서 논문조작 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언론과의 갈등은 상당히 심각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를 끝까지 믿으려하는 사람들과 그의 거짓말에 치를 떠는 사람사이에 반목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사건의 진실과 의미는 아직도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누군가를 아주 쉽게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감동적인 스토리텔링만 이루어진다면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가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인(hero)의 진정한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믿으려하지 않거나, 자신은 처음부터 그 사람이 이상했다고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해 가졌던 호감이나 믿음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환영하는 시민적 망각
 
 맹신의 문제는 내가 그 사람에게 가졌던 믿음이 지지나 투표 등으로 이어졌고, 비록 그 대가가 무엇인지 모두 파악할 수 없을지라도, 이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렀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는 이러한 반복된 오류에도 불구하고 ‘맹신의 위험’을 전혀 학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창조한 누군가를 신을 바라보듯 혼 줄을 빼앗겼다가, 잠시 정신을 차린 후 또다시 자신을 홀릴 누군가를 좀비처럼 찾아 헤매는 행위를 반복한다. 시민들은 마치 연예인에게 중독된 사람처럼 누군가를 갈구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권력자는 ‘마야’ 곧 환상을 만들어내고, 오디세우스가 로터스 열매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처럼 주체적 지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정치인이 가장 환영하는 것은 시민들의 망각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신념은 없고 욕심만 가진 수많은 정치인이 아직도 정치무대를 서성거리게 하는 것은 그들이 배신을 반복해도, 정치인과 미디어가 만든 환상을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결국 정치적 악마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 불러낸 것이다.
정의석 <인문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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