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고, 계획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명절 인사를 받고나서야 복은 그렇다 치고 ‘나’의 올 한해 계획은 ‘무엇’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수년을 습관처럼 한 해가 시작되면 ‘올 해에는’하고 했던 소망이나 다짐, 각오가 아직 없다. 오랜 경험으로 마음을 굳게 먹어도 ‘3일’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눈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가기 바빠서인지, 혹은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인지 별다른 계획이 없다.

 오랜 육아 휴직 끝에 복직을 앞 둔 조카는 올 한해 계획을 묻자 회사에 잘 적응해서 퇴사 안하기가 목표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라고 물으니 그녀는 뜬금없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단다. 자신에게 닥친 불편을 불평할 뿐인 동료들에게 할 말하면서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팀의 막내이고 동료들은 20년 이상 근무한 선배들인데 대체 어디까지 말 할 수 있을까. 그녀가 각오대로 행동한다면 회사에 ‘잘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왠지 퇴사가 앞 당겨질 것도 같다. 아무 각오 없이 복직했다가 마주하게 될 직장생활의 수고로움을 그저 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조카의 방에는 ‘1. 공기업, 2. 대기업, 3. 대학병원’이라는 글과 ‘100번 떨어진 후에 후회하자’는 다짐과 함께 하루 일과와 시험과목에 대한 글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명절 준비로 바쁘고 시끄러운 중에도 책상에 앉아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 모습이 그날 그날의 정해진 분량을 소화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목표하는 것들이 곧 이뤄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계획적으로 산다고 해서 무엇이든 다 이뤄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일인지 ‘성공’이 보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연초에, 새 출발 하려는 때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할 때 각종 계획서를 작성한다. 인생계획서, 생활계획서, 업무계획서, 공부계획서 등을 작성하기도 하지만 휴가나 방학처럼 쉴 때에도 계획을 세운다. 왜? 누군가는 계획이란 미래에 대한 현재의 결정이라고 했다. 또 소망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자신만의 매뉴얼이고,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의 위치와 방향을 가르키는 나침반이라고도 한다. 마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심보험 같다. 그리고 가끔은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의욕이 너무 앞서 목표를 크게 잡고 뒷심이 딸려 흐지부지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다짐이나 소망,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작전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계획이나 소망은 구체적이면 좋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세부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하라. 복직하는 그녀의 ‘할 말하며 살겠다’는 각오는 아무 말이나 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아직은 육아’이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충분하길 원하며, 일에 적응했지만 그것에 치이지 않은 ‘좋은 엄마’에 대한 자신의 소망일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동료들과 분명한 업무 분장과 불필요한 추가 근무, 출장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수 있다. 또한 목표를 잘게 나눌 필요가 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곳을 정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각 단계별로 준비하면서 매일 자신이 해야할 공부의 양을 정하고, 시간대 별로 어떤 것을 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부족한 부분이나 누락된 것을 확인하기 쉽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공부를 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어렵다. 평소 ‘내가 좀 희생하면 된다’는 그녀가 ‘(내 아이들 위해서)나 좀 편하자’는 생각이 들 때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먹는 것을 좋아하면 체중감량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실행이 ‘어려운’것을 소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공하기 어려운 것 일수록 철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 반면 일상에서 편안하게 처리하는 일들은 별다르게 궁리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아직 별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소망했던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조현미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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