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되자 가물었던 겨울을 씻어주는 눈과 비가 몇 차례 다녀가셨다. 들녘엔 유독 매서웠던 겨울을 이기고 오신 반가운 손님 봄까치와 광대나물, 쇠별꽃, 냉이, 꽃다지와 제비꽃, 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났다.

 이 환한 봄날에, 한새봉 논에서 도룡뇽과 함께 토종 나락을 가꾸던 김영대 사무국장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요는 대인시장에 작은 정미소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또 다른 길로 정미소라는 가게를 여는 것은 수많은 밤을 새워 고민한 결과물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터여서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광주 북구 자그마한 골짜기인 한새봉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농사를 꾸려내면서도 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넘쳐났던 이라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큰 짐을 스스로 진다는 소식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도룡뇽과 함께 원앙이 찾아오고 도시에서 밀려난 온갖 생명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는 한새봉 논밭지기를 하면서 더욱 더 깊어진 생명의 외경심과 함께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하는 이라 초대장을 허투루 보지 않고 다시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짧은 초대 말씀이 의미심장하다. 김영대 국장이 그동안 고민하였던 속내가 올곧하게 담겨 있다.

 “여명, 아가벼, 쇠머리지장, 가씨나, 버들벼, 자치나, 까투리찰, 족제비찰, 돼지찰, 대추찰, 졸장벼…. 과거 농부들이 발견한 벼들은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을 통해 벼들이 어떤 지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농부들로부터 격이 부여된 벼들이 유기화학과 멘델 유전학이라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벼농사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고부터는 인공교배를 통해 벼들이 만들어졌다. 이 벼들은 이름 뒤에 6호, 102호 등 번호가 붙어있다. 남선13호, 남선102호, 노린8호, 노린6호, 노린17호 등 무슨 로켓이나 로봇에 이름을 붙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인공교배를 통해 만들어 그 이름들 속에 숨겨진 생명의 격을 생각하게 된다. 인공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벼들 중에 상품으로 인정받은 벼들의 흔적을 이름 뒤에 붙은 번호가 말해주는 것 같다.

토종쌀 유통·판매, 텃논 보급

 벼의 이름, 그것은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변화된 우리의 삶과 경험의 방식, 그에 따른 사고방식을 적합하게 설명해준다. 이렇게 사라져버린 벼들과 그 이름들 속에 숨겨진 생명의 격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사라져간 벼들의 의미와 가치의 재생을 꿈꾼다.”

 이 초대말씀에 담긴 의미대로 ‘맑똥 작은정미소’에서 호명하는 토종나락들의 외침이 더 맑고 뚜렷하게 울려서 널리 펴나가기를 빌고 또 빈다.

 작년, ‘한새봉두레’에서는 한해 ‘쌀 인식 및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쌀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몇몇 식량자원들 중의 하나인 쌀의 지위와 사회적 기능이 미래에는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를 찾아보고자 했던 조사였던 것 같다.

 이 조사에서 시민들은 ‘생산방식이 낳는 미래의 가치와 비전’에 더 집중된 관심을 보였다. 이 가치가 확보되고 지속될 수 있을 때, 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생산방식에 대한 관점이 제대로 섰을 때, 건강과 맛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조사였다.

 이 설문조사가 ‘맑똥 작은정미소’를 여는데 근간이 되었던 것 같다.
 토종쌀 가게를 내세운 작은정미소는, 우선 토종쌀 유통과 판매와 함께 도시 안에 텃논 보급 및 이와 관련한 교육을 한다고 사업의 방향을 잡았다.

 또한 광주에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산지형 다랭이논의 생태적 관리 유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한단다. 이는 일몰제에 따른 대안운동으로서 또 다른 도시 안 생태공간(비오톱) 확보를 위한 사업이라고 맑똥 김영대 국장은 말한다. 물론 토종벼 씨앗 나눔도 펼칠 생각이다.

 척박하기만한 도시에서 그것도 어렵게 농사를 이어오고 있는 눈 맑은 농부들과 뜻이 맞는 시민들과 함께 우선 첫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종잣돈이 필요할 터, 그래서 ‘맑똥 작은정미소’에서는 저축금 펀딩을 받는다. 펀딩 기금은 토종벼 수매금으로 쓰여 토종벼 시장을 형성한다. 또 토종쌀 판매로 매년 후원금을 환수해 토종벼 수매에 재투입 하여, 농부가 토종벼농사를 짓게 돕는 종잣돈의 기능을 한다. 크게 보면 토종벼 종자를 보전하며 종자주권을 지키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라져간 벼들의 의미·가치 재생”

 대인시장 주차장 근방 참사랑 떡방앗간 옆 ‘맑똥 작은정미소’는 작은 정미소라는 말 그대로 작은 공간을 세내서 연 가게다.

 토종쌀을 파는 가게가 열리는 날은 매주 목, 금, 토요일이다.

 맑똥 김영대 국장은 첫 마음을 내서 상호부조의 네트워크의 멍석마당을 펼친 단체와 사람들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장흥 정장마을 농부들, 나주 토종스토리 예지향, 광주청소년문화의집 적정기술팀, 한새봉두레, 남도토종종자보전연구회, 토종씨드림, 청소년삶디자인센터, (주)가든프로젝트,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환경운동연합, 전국토종벼농부모임, 광주전남귀농학교, 한새봉농업생태공원, 한백생태연구소의 김영선 박사, 농촌진흥청의 박광래 박사…. 맑은 뜻에 공감하며 동참할 선한 단체와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갈 것이라 믿는다.

 한새봉두레가 논을 통해 지켜가고자 했던 쌀 생산방식이, 도시숲과 물길이라는 두 생태연결고리를 가지고 도시의 생태환경을 복원해가는 방향을 보여주겠다는 당찬 꿈을 품고 있는 맑똥 김영대 국장. 일몰제에 휘청거리는 광주, 이 도시에 그의 통 큰 결기가 일상의 경제와 어떻게 연결시켜갈 것인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러함에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논이 기후변화에 타는 도시에는 또 다른 대안이 될 거라는 그의 흔들림 없는 믿음에 동의하며, 우리가 작은 동참으로 가능할 수 있는 생각과 실천에 십시일반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

 ‘맑똥 작은정미소’의 꿈대로 농부도 살고, 시민도 살고, 숲도 살고 논도 살고, 이 터에 깃들어 사는 온 생명들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온누리에 여여하게 펼쳐지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김경일<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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