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임대아파트 불가능한 ‘혼인 상태’

 “제발 퇴원 좀 시켜주시오.” “이제는 밖에서 살고 싶소.”

 작년 겨울의 초입,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운동을 하다가 목을 다쳤고 10년째 장기 입원 중인 그는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는 예순을 넘긴 중증장애인. 사고가 있기 며칠 전 배우자는 고향으로 떠났다. 사고 이후 오랜 입원생활로 가족들의 왕래는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예측가능한 안정감을 주었지만 최소한의 것만 충족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안전했다. 몸 상태에 맞는 식단과 정기적인 치료와 조치는 필요하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만 충족하며 요양병원에서만 지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주변의 지원 없이 이동할 수 없다. 병실 바깥에는 그의 휠체어가 같은 곳에 놓여있지만 병원 주변을 산책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친구를 불러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외래 진료를 요청하는 것도 병원에 있는 이상 쉽지 않았다.
 
▲10년째 장기 입원 “제발 퇴원 시켜주세요”
 
 이제는 병원에서 요양이 필요하지 않음을 인식한 그는 몇 차례 퇴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돌아갈 집이 없었고, 지원해 줄 가족도 곁에 없었다. 공공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절차나 정보들을 확인하는 일은 그에겐 혼자서 확인할 수 없는 일이었고, 누구도 찾아와 알려주지 않았다. 가끔 병문안을 오던 친구도 그의 요구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그가 접근이 가능한 임대아파트조차 신청할 수 없는 어떤 조건 때문이었다.

 이런 기관, 저런 단체를 거친 후, 그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와 동행하여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다. 임대아파트를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퇴원 후 살 곳이 없는 그는 임대아파트만 선정되면 오랜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자립할 수 있었다. 며칠 뒤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그에게 배우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됐고, 세대원인 배우자의 개인정보 동의서와 금융정보제공 동의서가 필요하다는 것. 그게 없으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혼인한 배우자와 한 해를 보내고 헤어졌지만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다.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10년 전 고향으로 떠난 배우자의 신원과 행적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설사 연락이 된다한들 배우자에게 임대아파트에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혼을 하고 단독세대 요건을 충족 한 뒤 임대아파트를 신청하라는 답변을 행정복지센터와 관할 구청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10년 째 요양병원에만 있는 그가 자력으로 이혼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가난했고 가족들과 단절되었고 그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본 기관에서는 그의 이혼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그와 함께 대한법률구조공단 광주지부를 방문했다. 국제이혼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그것은 국내이혼 소송절차보다 더 까다로웠고, 무엇보다도 소송이 진행 될 6개월에서 1년의 기간이 그의 마음을 답답케 했다.
 
▲ ‘존재하지 않는’ 배우자의 동의서 받기
 
 그 이후 수차례 더 방문하여 관련된 서류를 제출했고 그의 국제이혼소송 대리인단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해를 넘긴 1월, 이혼소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며칠 뒤 이혼소장을 첨부하여 임대아파트를 다시 신청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해당 구에서 연락이 왔다. “신청이 어렵겠는데요.”

 구청의 주거복지 담당자는 그가 서류상 배우자가 있다는 것만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배우자의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없이는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담당자에게 그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청인은 10년 가까이 혼자 병원에 장기입원중이고, 배우자를 포함한 모든 가족과 관계가 단절되어 실질적인 1인가구라고. 배우자와 오래 전 헤어졌으므로 임대아파트 신청을 위한 동의서를 제출할 수 없다고. 국제이혼소송을 이번에 신청했고 앞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기간이 지나야 이혼이 확정될 텐데,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 배우자의 동의서 때문에 10년째 있는 요양병원에서 1년이나 더 지내야 하느냐고.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혼소장을 증빙하여 다시 제출했노라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논의하여 신청하는 방향으로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임대아파트 선정과 관련한 진행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최근에 그와 함께 해당 구청에 방문하여 질의했고, 현재 재산정보를 조회중이라고 한다. 그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신청한 임대아파트 내 종합사회복지관에도 먼저 방문했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퇴원 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제 그는 시작했다. 또한 자립에 필요한 서비스들을 확인하고 신청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 “한사람도 소외받지 않도록…”
 
 ‘임대아파트 신청절차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것,’ ‘복지서비스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자세히 안내해주는 것’ 만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건네 준 안내문을 읽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신 읽어주기도 하고’,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러 이동할 수 없는 경우에는 차량도 지원하고’,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오기 어려운 경우엔 집으로 직접 찾아가야할’ 사람이 있다.

 주거약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됐고,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지만 신청 요건과 절차가 기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신청한 서비스의 신청 요건이 충족한지? 그렇지 않은지? 제출한 서류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청인이 이의가 있을 경우 그것에 대해 필요시에 방문하여 서류로는 드러나지 않을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고민해 볼 절차를 만드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그것이 행정의 또 하나의 의무가 아닐까?

 신청인이 막무가내여서, 다른 관련 기관의 요청 때문에 곤란하지만 마지못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신청하는 누구나 서비스 이용에 대한 욕구와 다양한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을 이제는 기대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은 전산과 서류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 그것이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광주’라는 슬로건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을 고민의 출발이다.
려형<권익옹호기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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