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5·18 38주년 기념일을 맞아 순례단을 꾸리고 있는 필자는 준비 차 망월공원묘지 신묘역과 구묘역, 그리고 금남로의 5·18 기념관을 각각 방문하였다. 총알에 맞아 깨진 광주은행 유리창, 수레에 실린 시신들, 길가에 널부러진 신발들…. 몇 번을 봐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이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오직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열사들의 묘역 앞에 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는 너무 거대한 나머지 눈을 돌리게 만드는 아픔들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국가폭력은 사회적 맥락과 닿아 있다

 잠시 이들이 살해당한 명분이기도 한 ‘빨갱이’라는 단어 자체에 담긴 이념적 배경을 상기해 보자. 여기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부터 시작된 반공, 반좌익 사상의 총체가 담겨 있다. 즉 누군가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 사람을 반국가세력이자 더 나아가서는 악마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5·18과 그 뒤의 일부 세력에 의해 자행되는 역사왜곡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어쩌면 이런 국가폭력의 단적인 예시는 우리 사회에 있는 권력구조가 아주 특수하고 예외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좌익에 대한 멸시와 억압이 상시적으로, 국가적 차원으로 조장되고 있었으며, 5·18 역시 이런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 제 59조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등은 어떨까? 필자는 이런 법들이 ‘빨갱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처럼 장애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이 법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법보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집배원·버스기사·병원노동자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다.

 필자는 이들의 과로와 힘든 생활수준이 법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에 의해서 조장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흔히 ‘오월정신’이라고 칭해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 속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광주가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주변 약자 돌보는 게 ‘평화’ 출발점

 지난 5월3일 전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전두환이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지난 해 4월 전두환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 나는 책임이 없다”고 회고록에 작성했다. 또 “헬기 사격은 없었다”며 “헬기 사격을 봤다고 한 고 조비오 신부는 가면을 쓴 사탄이고 성직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필자는 여기서 문득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게 하고, 평화는 우리가 가져오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듣기에 따라서는 허를 내주고 실을 취하자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5·18을 왜곡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약자들 역시 돌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진정한 ‘오월정신’이 계승되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박성원<전남대학교 사회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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