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국민청원은 현대판 신문고 제도일까? 국민청원제도의 원형인 ‘위 더 피플’(2011년 9월)을 만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떤 의도로 이 제도를 만들었을까? 국민청원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보수적 매체가 비판하듯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훼손이거나, 심지어는 독재정치에 가까운 것일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정치적 포퓰리즘일까?

 2018년 5월19일까지 국민청원에 올라온 청원은 약 18만9000건에 이른다. 대단한 숫자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가 언론에 나타나면 국민들은 재빠르게 청원의 형태로 반응한다. 2017년 8월19일 국민청원코너가 생긴 이후 매달 2만여 건씩, 매일 600여 건 이상의 청원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청원에 대한 답변기준(30일간, 20만 명 이상 동의)에 도달하여 현재까지 정부가 답한 청원만 총 26건에 달한다. 답변기준에 근접하거나 초과한 이슈는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고, 찬반에 대한 논쟁이 다시 사회적으로 뜨거워진다. 사건발생-언론노출-국민청원(국민들의 관심)-언론노출-국민들의 관심의 순환 고리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 개입된 심리적 측면들은 무엇이 있을까?

 보수적 매체와 인사들이 비판하는 논리는 다음 몇 가지이다. 첫째, 국민청원은 대의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원전폐쇄에 대한 ‘숙의(熟議)제도’ 적용부터 이미 나타났었다. 선거로 인해 선출된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소신 있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마치 여론의 질타를 피하려는 듯, 공론화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 대의민주주의 제도 훼손이라고?
 
 그러면 국민청원은 진정으로 대의민주주의의 훼손일까? 이는 대의민주주의를 절대화하는 전제 자체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인류는 원시적 형태를 지혜를 지닌 때부터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상식(common sense)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상식을 사회에 적용시키고자 꾸준히 지향해왔다. 과거 민초들의 농민운동에서, 현대 한국에서 나타난 4·19, 5·18 등 민주주의 운동들 모두 대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난 교정 작용이었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언급한 것처럼 상식은 공동체가 공유한 암묵적 도덕체계로서 단순하지만 확실한 사회적 지침이다. 최근 한국의 국민청원은 기존의 정치행위가 상식에 어긋났다고 보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정상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시민이 이러한 시도를 항상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시민은 장기간 무력한 상태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정치상황을 견디기도 한다. 하지만 인내의 한계가 드러났을 때 강력한 정치적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러한 정치적 행동이 성공적인 결과를 맞이했을 때, 시민의 정치행위는 지속성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은 2016~2017년까지 진행했던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정치적 유능감을 배우게 되었고,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며, 정치를 바꾸는 매우 유용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과거 민주화 시위가 독재정권을 바꾸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둘째, 삼권분립을 훼손하거나, 헌법이나 법률을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파이낸셜 뉴스는 “靑 국민청원 16만 건…‘참여 민주주의’ VS ‘대통령 만능주의’ 조장”(2018.03.11.)이라는 기사에서 국민청원이 “사법, 입법 영역까지 확산돼 장기적으로 삼권 분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는 “법치주의는 안녕한가”(2018.5.11.)라는 칼럼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지, 일시적으로 분노한 여론이나 막연한 다중의 의사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가 절제를 잃거나 왜곡된다면 더 큰 잘못일 수 있다. 국민청원 문제는 여론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판결이 부당하면 상소해 다툴 일이지 법관의 파면을 촉구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 “상식에 근거한 민주주의” 염원 통로
 
 현재 시민들은 국민청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시장조사기관 ‘두잇서베이’와 함께 성인남녀 35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3.7%가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답했다고 한다.(금강일보, 2018.4.24. 청와대 국민청원 과열·변질 양상) 이는 시민들은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 이외에 사법부, 입법부가 적폐라고 보고 있으며, 삼권분립의 나머지 두 축이 국민들의 시선과 상식에 맞도록 변화하라는 강력한 요구이다. 입법부인 국회의원의 경우, 국민들은 추후 총선에서 자신들이 권력지형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선발과 인사시스템으로 국민들이 의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집단으로 치부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 사법고시제도폐지 등으로 더욱 더 사법부의 보수화, 정치화는 가속될 것이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도 커지게 될 수 있다. ifs post는 “사법기관 불신은 국민 법감정과 사법부의 위기”라는 기사(2018.5.18.)에서 “국민 법감정과 사법부 법감정이 일치할 때, 나아가 ‘법감정’이란 표현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때라야 우리는 사법부 신뢰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법이 정의 구현의 수단임을 잊은 지 너무 오래다. 사법 불평등 시대, 한국 사회 법치주의는 과연 안녕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청원에 대한 세 번째 주장은 청원에 올라온 내용 중 다수가 무가치하거나, 장난이거나, 반사회적 민원으로서 사회적인 혼란과 언론의 낭비만을 야기하므로 폐쇄하자는 주장이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민원을 읽어보면 그런 글도 상당수가 있지만, 대체로 그런 글들은 거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욕설, 폭력적, 선정적 언어사용은 운영자에 의해 즉각 삭제되며,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청원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자동적으로 정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청원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접근가능성을 최대한 허용하기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기에 부작용보다 그로 인한 득이 크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국민청원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포함한 국가전체가 상식에 근거한 민주주의 실현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염원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주) 대표>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