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법 잔인 ‘사이코패스’ 낙인 안돼

▲ 연쇄 살인을 다룬 영화 ‘추격자’.
 최근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고유정의 남편에 대한 살인사건’이다. 많은 정신건강의학자, 심리학자들이 방송과 신문 등에서 그에 대한 관점과 설명을 언급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나까지 첨언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그들의 관점과 다른 관점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짧은 글을 올려보기로 한다.

 이번 사건에 발생하자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일명 ‘사이코패스’였다. 정확한 용어로는 말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그리고 이후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경계선 성격장애’를 언급하였다. 아마 어디에선가 다른 전문의, 임상심리학자, 상담심리학자 등이 기존의 진단 이외의 것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고유정에 대한 진단명을 언급하는 것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것 이외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본인은 전문가와 미디어가 이러한 진단명 쓰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자 한다. 그리고 관찰자인 자신은 정상이며, 특정한 행동을 한 사람은 비정상으로 정의한다. 일종의 관찰자 편향이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정신세계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고유정을 정신병이라고 보려는 것 자체를 의심해야한다는 말이다. 정신병을 가져야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고정관념은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정신병=끔찍한 범죄’ 등치화 위험
 
 과거에서 현재까지 많은 범죄는 정상인에 의해 발생했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감정경험과 감정표현을 할 수 있었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다. 어떤 경우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잔인했다(일종의 슈퍼휴먼, 초인으로 인지되었던). 영웅으로 취급되었던 수많은 사람들, 독재자로 비판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고유정을 병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약하다. 고유정의 사회적 활동을 고려했을 때 정상적 범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나 최근에 친구, 가족들과 만남 등은 그녀가 정신과적 질병을 지니고 있다고 볼만한 게 거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반적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병리적인 진단명을 붙이고자 할까? 그것은 살인의 대상, 방식 등이 지나치게 잔인하기에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보고자 하는 ‘반사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저 정도의 끔찍한 일을 할 정도면 정상이 아닐꺼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JTBC는 6월13일에 범죄수법이 잔인하다고 해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내용을 방송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를 사이코패스라 언급하고 싶어 한다.

 비정상에 대해 시대와 문화에 따라 특정 개념을 부여 되었다. 과거에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해 ‘야비한’, ‘천벌을 받을’ 등 도덕적, 종교적 개념을 부여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비정상에 대해 ‘병리적 개념’을 부여한다. 이러한 접근은 매우 과학적인 것 같지만 정치적이고, 문화적이다. 인간의 행동을 평가하는데 심리학적 설명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은 자만이자 암시이다. 그것은 일종의 신화이다.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지향하기보다는 정신병 시장을 확장시키려는 전문가집단의 전략일 수 있다.

 문화심리학자들은 심리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건, 표현방식, 명명, 개입방식 등이 문화마다 다르며, 그 차이는 문제가 가지는 맥락을 잘 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인은 ‘화병’은 권위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억울함이 주요 원인인데 이것을 단순히 우울증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면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폭력성’ 병리적 아닌 보편성으로 접근해야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할까?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내재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이와 같은 유사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병리적 인간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가정이 암암리에 인정된다면 사람들은 병리적 인간을 찾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현대판 ‘마녀사냥’이 될 것이다. 폭력성을 가진 보편적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철학, 문학, 종교 등이 오히려 심리학보다 정확한 관점을 제시할지 모르겠다. 정신의학자, 심리학자들은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현상을 자신의 시각에 꿰어 맞추려 하는 것은 아닐까?

 정상적 인간이지만 상상 이상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예를 신화에서 찾아보자. ‘메데이아’는 이아손이라는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의 남동생을 죽여 사체를 나누어 바다에 버리고,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두 아들까지 죽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를 병리적인 진단명을 붙여야 할까?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상담자들은 이상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 우리가 세상의 이상(abnormal)을 정의하고, 설명하리라는 오만함을 버렸으면 한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오염시키는 작업을 그만 두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스스로 속이는 것이자, 세상을 속이는 것이고 지적 폭력이다. 우리는 이제 DSM의 거룩한 신화를 버려야 한다.(참조: DSM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만든 정신과적 진단을 위한 매뉴얼이며, 정신건강전문가가 참고하고 있는 기준이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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