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상헌 선생은 광주의 한 중학교 도덕과목 교사다. 그는 ‘성과 윤리’ 단원 수업중에 학생들에게 단편 영화 한편을 보여줬다. 프랑스서 제작한 ‘억압당하는 다수(Oppressed Majority)’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11분으로 남자와 여자 간 전통적인 성역할을 뒤바꾼 일명 ‘미러링 기법’을 사용, 성불평등을 고발하고 있다. ‘역지사지’, 배이상헌 교사는 성인지 감수성을 촉발하는 효과적인 수업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 영상엔 여성이 상의를 벗고 있는 장면, 성적인 대사, 남성 상대 성추행 장면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국민신문고에 해당 교사를 ‘성적 수치심’으로 고발하는 민원이 접수됐다. 광주시교육청은 이를 ‘성비위’로 판단하고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른 수업 배제 조치를 취했다. 배이상헌 선생은 ‘교권 침해’라며 수용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했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교육청은 지난달 26일 1학년, 이달 8일 2, 3학년을 대상으로 전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해당 교사가 수업시간에 성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몇몇 사례가 추가됐다. 교육청은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가 개시되고 지난 24일, 교육청은 후속조치로 당사자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배이상헌 선생에 대한 징계 절차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주지역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성비위 매뉴얼 따라 진행”

 ‘교사의 수업 내용을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교권 침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은 “교육청이 이를 ‘성비위’로 규정한 건 첫단추를 잘못꿴 것”이라고 지적한다. ‘스쿨미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안은 “교육청이 수업에 대한 민원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교육 내용과 의도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신고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수사 의뢰하고, 학교성고충심의위원회 개최 전에 수업 배제 조치를 취하면서 당사자의 소명기회를 박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면 “아무리 교육적인 취지라 해도 학생들의 발달 단계를 충분히 고려해 수준에 맞는 자료를 활용했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 간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소통이어야 하므로 학생들이 수업내용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피해를 호소했다면, 관련 사실을 파악해 적절히 조치하는 게 먼저”라며 “피해를 호소한 학생들이 있는 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다른 목소리다.

 배이상헌 교사는 이번 사태 후 SNS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공유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제기된 문제적 발언의 자초지종도 설명했다. 교육청이 사실 확인을 위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소명 기회를 갖지 못했던 배이상헌 선생은 이전까지 민원 내용을 정확하게 통보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중 △‘위안부 관련 발언 중에 위안부는 몸파는 여자, 위안부는 스스로 가서 그랬다’라는 말씀하신 사실이 있습니까? △ 도덕 수업 중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안되면 강간하면 된다고 말한 적 있습니까? 라는 두가지 발언이 중하게 다가온다.
 
▲“인용한 발언, 자신의 것으로 곡해”

 첫번째 질문과 관련, 배이상헌 선생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 관련 발언으로, 2018년초 문제가 된 부산 모대학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비판적으로 소개한 이야기인데 정반대로 곡해하고 신고했다”고 해명했다.

 두번째 발언에 대해선 “성적 주체성·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한 교과서 내용 중 ‘우리는 상대방의 적절하지 못한 성적 요구나 표현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본문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성적 스킨십의 쾌락적 느낌에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거나 의사 표현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발언이었다”고 했다.

 배이상헌 선생은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부모성 같이 쓰기를 실천하고, 성평등 결혼식을 치러 ‘부부결혼약정’을 호남 최초로 법정등기한 이력이 있다. 누구보다 앞장서 양성평등과 학생인권을 주창하고 실천해온 교사다. 이같은 배경이 더해지니, 이번 사태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이슈가 됐다.

 전교조 서울지부 송원재 선생은 “지금 광주의 배이상헌 교사가 악성 민원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성평등 수업 중에 여성단체가 추천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대사의 일부를 따서 음란물을 보여준 것처럼 몰았다”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잘못된 인식을 예시한 교사의 말도 거두절미해서 성희롱 발언으로 둔갑시켰다. 이쯤 되면 성관련 수업을 교육과정에서 아예 삭제하는 게 낫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규정대로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피해사실 관련 설문 결과 성비위로 규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피해자 우선’ 원칙에 따라 대응 매뉴얼대로 ‘분리조치’한 것인데, 그럼에도 교사가 수업에 계속 참여하는 등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결국 경찰 수사를 의뢰하게 됐다”는 것이다.
 
▲“스쿨미투 지지하지만 본때보이기식 안돼”

 배이상헌 선생은 “학생의 오해나 불만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서로 소통하고 풀지못하는 아쉬움과 반성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학생의 오해와 불만을 수용하는 어른들, 더 나아가 이를 성희롱·성비위자로 몰고가는 광주시교육청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은 25일 낸 성명서에서 이번 사태의 발단을 이렇게 진단했다. “광주시교육청이 교육부의 ‘학교 내 성희롱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잘못 적용하는 한편, 성비위 여부 판단, 사안의 경중에 맞는 조사방법과 해결을 전문적으로 판단할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스쿨미투를 학생의 성적 주체성·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 운동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으로 통제되는 학생의 성을 어른들이 보호하는 차원에 머무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성평등 교육과 온전한 스쿨미투를 지키는 사람들’(가칭)이 준비되고 있어 향후 활동이 주목된다. 이들 역시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라며 교육청의 접근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칼 빼들고 휘두르는 방식의 본때보이기식 접근은 스쿨미투의 지지와 스쿨미투 너머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면서 “스쿨미투를 지지하지만 성평등 교육 활동을 ‘성비위’로 낙인찍는 교육청의 야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번 사안과 관련된 보도에 ‘실명을 실어달라’는 당사자 요청에 따라 배이상헌 선생을 적시했음을 알린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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