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그의 언어는 왜 아름답지 못할까?
“글을 쓰는 사회적 목적과 가치 실종”

▲ JTBC ‘전용우의 뉴스ON’ 화면 캡쳐.
 참 미안하게도 JTBC신년토론회 이전에는 진중권 씨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JTBC신년토론회에서 그가 보인 태도가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나름대로 충격을 완화하고자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을 뿐이다. 철학자로서 그가 보인 비논리적인 태도와 공격성은 상황과 맥락을 벗어났다. 지금까지 어떤 토론도 이와 같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은 최고인 진보지식인이 보인 모습치고는 너무도 허망하고 처량했다.

 두 달 전 진중권 씨에 대한 컬럼을 쓸 때 2개로 나누어 글을 쓸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그에 대한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감염과 같은 중차대한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 글을 쓸 가치가 별반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 인사가 무엇을 주장했다면 그의 주장에는 사회적 목적과 가치가 있을 텐데, 그의 주장에는 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피해의식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위로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피해의식을 감소시킬 목적을 위해 방송과 지면을 사용한 것이라면 굳이 그가 쓴 글에 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잠수함 속 토끼’ 그의 피해의식
 
 부득이하게 독자와의 약속을 원망하며 그에 대한 글을 완성하고자 한다. 도대체 진중권씨의 피해의식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일까? 그가 진보정치인에게 받은 어떤 불이익이라도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가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활동하면서 과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는가?

 그가 피해의식이 상당하다는 것은 그의 인터뷰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잠수함 속 토끼’로 명명한다. 필자는 그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개념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 그가 지금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가 가진 표현을 도덕적 완벽주의로 이해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잠수함 속 토끼’ 혹은 ‘동굴 속의 카나리아’ 등의 비유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토끼 혹은 카나리아는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자, 약자, 희생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도덕성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고 있는 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도덕적 절대성을 이렇게 강조할 수 있을까? 그는 또한 자신을 마치 예수님이나 예언자처럼 핍박을 받는 사람으로 지각하고 있고, 마치 한국이 그에게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자유도 주지 않은 것처럼 표현한다. 자신을 피해자로서 정의하면서 타자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식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행동은 망상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종종 망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 사고를 듣는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심각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주변의 타자들은 대체로 그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를 인정하더라도 그다지 피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말하는 내용은 대체로 상대가 째려보았다, 친절하지 않았다, 내 요구를 거절했다 정도이다.

 망상을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2차적 불인정에 더욱 화를 낸난다. 그는 점점 상대방의 의도와 행동을 과장되게 반추하고, 분노하고, 결국 상대방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충동에 휩싸인다.
 
▲“타인 다치지 않는 친절함 필요”

 그는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은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의 언어적 폭력은 당장 상대방의 상처가 보이지 않기에 폭력이 아닌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매우 잔인한 폭력을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논객도 진중권씨처럼 폭력적인 토끼였던 적은 없다. 그는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개인 혹은 사회에 폭력을 가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촌철살인의 표현은 그의 뛰어난 직관력과 언어적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런 그의 장점이 역으로 언어적 폭력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의 말은 점잖은 듯 하면서도 폭력적이다.

 그가 진보정치인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그가 비판할수록 그의 도덕성을 칭송할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를 놀림거리로 삼거나, 열등감 덩어리라는 비난만 할 뿐이다. 야당이라 하더라도 그의 비판이 자신들의 정치적 실리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환영할 뿐이지, 그를 자신들과 동색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스스로 들어가려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지식인, 종교인 중에서 모든 분야를 다 아는 듯이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판적 지식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로 인해 얻는 사회적 이익도 적지 않겠지만,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범위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자신의 말이 가진 폭력성으로 타인을 다치지 않게 하는 친절함이 필요하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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