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생태숲 40여 곳 탐사·기록
생명과 훼손…기쁨과 아픔 교차

광주드림 창간과 더불어 연재를 시작했던 <앞산뒷산>을 이제 끝내려 한다.

2주일 마다 어김없이 갖춰 신었던 등산화를 벗어버리려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애초 우리 주변 작은 산들의 가치를 되새겨보고자 한 것이 기획의도였다. 크고 이름 있는 산에만 관심을 두고, 발걸음을 집중하다보니 동네의 산들은 방치돼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틈을 타 그 산들을 탐한 무리들은 따로 있었다. 개발론자들인데, 그들은 산에서 나무를 뽑아내고 숲을 파헤쳐 건물과 아파트를 지었다.

도시의 작은 산들이 그렇게 사라지거나 훼손됐다.

<앞산뒷산>은 2년여 넘게 우리 주변 작은 산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봤다. 존재의 의미를 다시 일깨웠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였다.

군왕봉, 제석산, 백일산, 발산, 일곡지구 뒷산, 풍암산, 양림산, 금봉산, 수박등, 금당산, 삼각산, 개금산, 매곡산, 새인봉, 백마산, 어등산, 운암산, 팔학산, 장원봉, 화방산, 봉림산, 짚봉산, 용진산, 용산, 봉산, 제봉산, 바랑산, 백석산, 깃대봉, 사월산, 장군봉, 노적봉, 장구봉, 분적산, 석문산, 등용산, 복룡산, 송학산, 건덕산, 내지마을 앞산, 갈미봉, 팔랑산...

2년 반 동안 <앞산뒷산>이 탐사하고 기록한 산이다. 40곳이 넘는다.

기쁨으로 올랐던 산도 많았다. 건장한 소나무가 수문장 선 개금산, 도심 속 진짜 원시림 양림산, 토종 소나무가 우람했던 제봉산은 식생이 다양하고 건강했다.

정상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금당산은 자부심으로 오를 만 했고, 키 높은 소나무들 사이로 상쾌한 햇살 쏟아졌던 깃대봉의 봄은 한없이 푸르렀다.

봄날 솔숲 향에 취했던 군왕봉, 첫날의 다짐 후덕한 품에 안겼던 새인봉, 하늘을 가린 얽히고설킨 수풀이 우거졌던 바랑산은 무등산을 뒷배로 신록을 뽐냈다.

잊혀져 가는 산도 많았다. 대개의 경우 이런 산들은 등산로가 사라져 산행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팔학산, 사월산, 노적봉, 갈미봉, 팔랑산…. 할퀴고 찢긴 상처를 가득안고 내려온 산들이다.

<앞산뒷산> 산행이 40여 회를 넘어가면서 남아 있는 산들은 대부분 이와같은 처지였다. 우거질 대로 우거져 등산로가 사라져 버린 것. 연재를 지속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산자락에 깃든 사람들의 삶도 산을 닮았다.

노적봉 아래엔 화산마을이 있다. 꽃메마을 또는 골메골이라 불리는 이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은 노적봉의 유래와 주변에 있는 쥐봉·괴봉·산적골에 얽힌 사연까지 술술 쏟아냈다.

볏단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새가 이 마을 풍요의 원천이었음에, 노적봉은 주민들에게 평생 감사의 대상이었노라고 했다.

광산구 산월동 월봉마을 사람들에게 봉산은 삶의 지킴이였다.

집 앞 전답까지 아파트가 밀고 들어온 도시에서 뒷산이 개발의 저지선이 돼 준 것. 한때는 땅 팔고 도시에 나가 흙 묻히지 않고 사는 삶을 갈망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상비가 평생의 호구책은 못될 것은 자명한 이치. 그때 이 터전마저 내놨다면 현재의 오순도순한 삶은 꿈도 못꾸고 일생 후횟거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만만한 언덕 수박등엔 콩이며 작물을 재배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시골에서 막 올라와 막막한 도시에서 마음 붙일 수 있도록 도와준 터전이었다”는 주민들에게 산은 또 다른 의미로 자리매김돼 있었다.

<앞산뒷산>은 도심 속 깨닫지 못했던 생명과 생태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가치가 무시되고 개발을 앞세워 허무는 현장도 많이 목격됐다.

사방 빙 둘러 학교와 시설물들이 들어서면서 자락이 온통 건물로 둘러싸인 화방산, 산 가운데 도심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속살이 헤집어진 개금산의 상처가 눈에 선하다.

경작을 위한 훼손이 심해서 밭이 돼가고 있는 운암산, 광주공항 활주로 공사를 위해 암석을 캐가 절벽처럼 깎인 상처 깊은 금봉산도 눈에 밟힌다.

산 가운데 경작물을 지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철조망이 나무속으로 파고들어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긴 곳은 짚봉산 뿐만은 아니었다.

금당산에서도 이런 광경은 목격됐다.

조선대 뒷산 깃대봉엔 뚫다만 도로가 수십 년째 방치돼 있었고, 서창동 송학산은 온통 묘지가 점령해 흉물스러웠다.

<앞산뒷산>은 2년여 동안, 언젠가는 사라지고 훼손될 것이 뻔한 도심 생태숲을 탐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의 산물은 절반의 기쁨과 꼭 그만큼의 아픔이었다.

지금의 생태숲이 과거의 유물이 되지 않도록,

<앞산뒷산>의 탐사기록이 광주시의 녹지 보호 정책에 귀중한 자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이 연재물을 위해 수고해 주신 ‘생명을 노래하는 숲기행’ 김영선 대표와, 때때로 산행에 동참해준 회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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