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 선 마을들]
<8>남구 임암동 가산마을

▲ `산이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의 남구 임암동 가산마을. 뒤편 산이 화방산이다.

 “우리 동네는 신문에 날 일이 없는 디여.”

 이렇다할 사건도 없고 모난 사람도 없다. 이름마저 아름답다. `가산(佳山)’ 마을. 남구 임암동 자연마을인 이곳은, 송암고가에서 씨티재활병원 입구를 지나 송원대학을 끼고 농로를 따라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온다. 화방산 남서쪽 자락인데, 김치타운 신축현장 아래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도심 속 외지인 셈. 노인들은 버스 타려면 송암동까지 2km를 걸어가야 한다.

 마을 이름인 `아름다운 산’은 화방산. 아이러니하게도 화방산은 이미 학교 건물과 종교시설, 김치타운 등 크고 작은 건축물들로 바깥쪽이 뜯겨져 나가 있다. 

 그럼에도 동네주민들은 “6·25때도 난리를 피해 이 마을에만 들어오면 다치거나 죽어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정말 `신문에 날 일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담 너머 가지를 늘어뜨린 감나무들이 눈에 띈다. 마치 “누구든 따다 잡솨”하는 듯.

 실제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담양댁(71) 할머니는 “어른들 말로 전쟁 때 송정리에서 우리동네 지나 효천역 가는 논둑길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밤이면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내놓았다. 다음날 아침이면 빈 바가지만 남았는데 국군이 마셨는지 인민군이 마셨는지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마을은 외진 만큼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아야 30~20가구 수준으로 별 차이가 없다.

 북구 오치에서 스물 한 살에 이 동네로 시집와 54년 됐다는 오치댁(71) 할머니는 “논농사 조금에 콩이나 고추 심어 사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고, 특별히 잘 사는 사람이나 특별히 못사는 사람이 없는 것도 그대로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비를 피해 마을 경로당에서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월 대보름이면 청년들은 빈 논에서 공을 찼고, 걸궁(풍물)도 쳤단다. 하지만 걸궁소리 없어진 지가 20년은 됐다고 한다. 전쟁 후 화방산, 광주대, 멀리 무등산까지 나무하러 갔던 일, 그리고 지금 화방산의 나무가 당시 무릎도 차지 않았을 때 바닥 잔가지를 긁어와 땔감으로 쓰던 일들로 입방아는 계속돈다.

 인근 도동에서 시집 오신, 좌중에 가장 고령인 소동댁 할머니(74)는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젊었응게” 하신다.

 초가을 장마에 농작물 걱정도 이어진다. 

 “콩이 집을 지스믄 (알맹이가) 또르륵 해야 헌디, 없어. 콩도 아니고 뭣도 아니여.”

 “나락도 딱 여물만 헌디 비가 쏟아졌제. 꼬추도 못 말려서 다 배레부렀어.”

 이 마을에도 개발의 바람은 어김 없이 닥쳐왔다. 주택공사가 오는 2009년부터 아파트를 짓기 위해 도시개발에 들어간다. 이주를 앞둔 노인들의 표정은 어디나 똑같다. 

 “우리 영감은 집이 뿌셔졌어도 `이주된 게’ 험서, 고치덜 안해.”

 내리던 비가 살짝 그치자, 양촌댁(64) 할머니가 일어선다. “파 숭구러(심으러) 갈랑마.”

 `아름다운 산’ 아랫마을. 하지만 이미 그 산 자락은 빙 둘러 패였고, 그 산에 의지해온 마을과 그 품에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도 이제 볼 일이 많지 않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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